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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0. 2020

국내편) 1-2. 팅부똥 유학일기

1장. 거지조차 부러웠다.

초보 유학생에게 중국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두려움이었다. 중국은 위험한 나라고 중국인은 사기를 잘 친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 살벌한 세상 안에서 표지판 하나도 제대로 못 읽는 문맹 이요,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내뱉지 못하는 묵언 수행자와 같았기에 더더욱 외출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보이는 건 한자, 들리는 건 쏼라쏼라 뿐이었다. 그냥 바보가 된 느낌이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외로움과 무료함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05년 도라 스마트 폰이 없었다.)를 하고 한국 드라마 DVD를 사서 보며(또한 넷플릭스도 없었다.)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대로 중국까지 와서도 중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하지 않았다.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포부를 가득 안고 왔지만 현실을 마주하니 그 벽은 상상보다 높았고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북경 어언대학교에서 단기 어학연수 코스를 수강할 계획이어서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북경에서 알게 된 친구가 그전까지 학원을 다녀서 기초를 쌓는 게 어떠냐고 했다. 입학할 때 시험이 있는데 그 시험 점수에 맞춰서 초, 중, 고급반이 나누어지기 때문에 기초가 되어 있으면 중급반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학원에서 기초 중국어를 시작했고 사람들도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생겨났다.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실수와 중국을 모르는 초보만이 겪을 수 있는 황당하면서 화가 나는 일들도 많았다. 중국어를 못해서 실수를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고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땐 ‘내가 중국어만 잘했어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겪은 일들을 사람들과 서로 하소연하듯 얘기하면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은 동감하고 처음 듣는 사람은 놀라워하고 모두가 재미있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는 와인처럼 쓰디썼던 경험이 시간이 지나니 달달한 추억으로 숙성되고 있었다.


난 이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졌다. 중국에 왔던 사람들, 중국에 있는 사람들, 중국에 오려는 사람들 모두들에게 말이다.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에서 거주하는 분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 역시 중국 생활 초반에 많은 정보와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 카페에 가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카페에 내 중국 생활의 에피소드를 연재 방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일기의 제목은 ‘팅부똥 유학 일기’였는데 팅부똥은 중국어로 ‘못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요즘처럼 줄여 말하면 ‘중알못(중국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유학 일기라고 표현하면 일맥상통할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내 유학 일기는 예상치도 못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조회 수를 이끌어냈고 급기야 내 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로 인해 내 유학 생활은 갖가지 양념들이 더해지며 더 다양하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외롭고 무료함에 지쳐가던 내가 점점 중국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의 힘은 매우 강력했다. 일기를 올릴 때마다 조회 수는 경신되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수없이 많은 팬레터가 이메일로 쏟아졌다. 중국에 여행을 오는데 밥 한 끼 먹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기를 퍼가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도 되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고 사업을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팬레터가 오면 반드시 답장을 해줬고 일기를 가져가겠다고 하면 승낙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리의 목적으로 내 일기를 쓰고자 하는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목적과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난 그저 내가 겪고 들은 얘기를 썼을 뿐인데 나비효과처럼 나에게 엄청난 변화들이 몰려왔다. 급기야 내 가까운 친구들은 내 앞에서 내 일기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너 유학생 카페에 그 일기 봤냐?”


친구 광희가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물었다.


“일기? 무슨 일기?”


난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너도 꼭 한번 봐. 요즘 난리야. 완전 재미있어. 나 어제 보면서 배 잡고 쓰러졌다니까.”


내 주변 사람들도 내가 일기의 작가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은 빈번히 발생했다. 일기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댓글과 메일, 쪽지 등을 통해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급기야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북경 유학생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글, 사진, 여행 그리고 향수가 있는

작가 인스타: @capp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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