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만춘 May 05. 2020

그 베스트셀러 작가는 왜 중국에서 입국 거부를 당했나?

여행의 이유

2005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상하이 푸둥공항 티켓 카운터에서 서울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사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여행자는 공항에서 항공권을, 더더군다나 편도는 사지 않는다.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추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9쪽


 왜 김영하 작가는 중국에서 추방을 당했을까? 정답은 비자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입국하기 위해 한국인은 비자가 있어야 한다. 며칠 안 되는 단기 관광이더라도 관광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보통 여권에 부착하는 아래의 예시와 같은 스티커 형식 비자를 발급받는다.


M(비즈니스) 비자


 <여행의 이유>를 살펴보면, 작가는 한 달 정도 중국에 체류하며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입국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단순 집콕, 관광 정도 이므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L90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적당했을 것이다.

*90일 동안 머무를 수 있는 관광 비자


 우리나라 여권은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가 무려 100개국을 넘는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비자 없이도 다른 나라에 갈 수 있으니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로나 이전 기준


우리는 공안 요원 전용통로를 지나 형식적인 소지품 엑스레이 검사를 통과한 후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를 말없이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인천행 비행기가 탑승절차를 개시하기를 기다렸다.
푸둥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동중국해 상공을 지나 어둠이 깔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10, 11쪽


 이렇게 필요 서류 불충분 등으로 입국 심사에 문제가 발생해 해당 국가로부터 입국이 거절되어 본국 혹은 제3국으로 송환되는 걸 우리는 '이너드(INAD, Inadmissible Passenger)'라고 한다. 내가 체크인해줬던 승객이 이너드가 되는 걸 우리는 최대실수로 꼽는다. 누구 한 명이 업무 실수로 침울해 있으면 '이너드 시킨 것도 아니고 뭘 그리 침울해 해!', '괜찮아, 이너드만 아니면 돼.' 등등… 뭐 이런 우스갯소리도 존재한다. 이너드가 되면 해당 국가에서 인바운드 항공사로 벌금을 때려버리기 때문에 진짜 좀 큰일난다.


내 생각에 김영하 작가를 체크인해줬던 직원은 어느 항공사인지는 몰라도 99퍼센트 경위서를 썼을 것이다. 말이 '경위'서지 반성문에 가깝다. 경위서를 한 번 쓰고 나면 며칠 동안은 회사에 죄인처럼 다녀야 한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혼자 찔려서 자숙하는 거다. 몇 날 며칠을 브리핑 시간에 이레귤러(IRRE, irregular) 케이스(비정규 케이스) 스터디로 관리자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경위서도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 본 사람은 없다고, 한두 번 쓰다 보면 점점 고개가 뻣뻣해지기도 한다. 혹시 그게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정말 아니다. 강한 부정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을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아마도 날리게 될 것이 뻔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15, 16쪽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베트남에 갈 때 15일 무비자지만 미국인은 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도착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비자레터를 준비해 오는데, 비자레터는 비자 발급을 허가하는 공식 허가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비자 발급이 너무나도 까다롭다 보니 이름에 스펠링 하나, 여권 만료일이나 생일에 날짜 하나라도 틀리면 그대로 거절이 되기 때문에 수속 시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 기준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날 하노이 게이트에서 환승객을 수속하는데 미국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하여 베트남으로 가는 베트남계 미국인 노부부 승객이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 승객의 레터와 여권 생일이  하루 차이가 났다. 여권  생일이 '15-JUL-1950'이면 레터에 '14-JUL-1950'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식이었다. 여권과 레터의 개인정보가 다르니 수속이 불가능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절대 떨어질  없다며 서로를 붙잡고 엉엉 울었고 비행기가 지연  다같이 울었다. 결국 새로 레터를 신청하고 우리 직원   명이 일반 A4용지 프린트가 가능한 직원용 카운터로 뛰어가 레터를 프린트해 딜리버리하며 둘 다 비행기에 태우는 경이로움을 선보였다고 한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행을 위해 공항에 오고, 나는 게임 속 NPC처럼 매일 그곳을 지키며 수백 수천 명의 여행자들을 인도한다. 여행의 이유는 제각각이어서, 공항 안에서 그들만의 이야기 보따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들이 떨어뜨리고 간 이야기 보따리를 주워담아 글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내고, 보따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며 그들과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그곳엔 희로애락이 함께 존재한다.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이 점철되는 삶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오늘도 여행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기를 소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연예인 A씨, 이 여권으론 탑승하실 수 없습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