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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un 08. 2024

트러스트 -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의 매력적 대답

에르난 디아스

 총평: 한 부부에 대한 네 가지 이야기가 교차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실은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 금융시장에 대해서, 능력과 성공이라는 신화에 대해서, 가족과 부부에 대해서 생각하고 의심하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매력적으로 대답을 하고 역으로 다시 질문한다. 무엇을 믿느냐고.


이 책은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자서전, 자서전 작가의 회고록, 그리고 일기. 각각의 다른 네 가지 이야기는 모두 앤드류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이라는 부부를 중심으로 쓰여있다. 중심인물은 동일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작가에 따라, 작품이 쓰인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1부는 소설 ’채권‘이다. 독자인 우리들은 이 소설을 통해 한 부부에 대해 알게 된다. (소설 ’채권‘ 속에서는 다른 인물로 나오지만 추후 나머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부부가 베벨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 앤드류는 월스트리트에서 영향력이 아주 큰 갑부이자 투자 전문가다. 그는 1920년대의 대공황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이득을 볼 만큼 감각이 뛰어났는데, 그로 인해 대공황의 설계자로 몰리며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는 감정이 희박하고 자산 증식에만 흥미가 있는 냉혈한으로 묘사된다. 부인 밀드레드는 머리가 비상하지만 가족력으로 인한 정신병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 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평범하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한 인물과, 그의 비극적인 부인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는 이 소설을 기반으로 나머지 세 파트도 읽게 된다. 그 부분에서 이 소설의 마법 같은 부분이 시작된다.


2부는 앤드류 베벨의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미완성으로 군데군데에 메모가 보인다. (예를 들면 ‘이 부분에는 예시를 넣을 것’ 같은 메모) 미완성이라는 점 빼고도 소설과의 차이점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소설에서는 앤드류가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는 관심이 없고 자산 증식에만 흥미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자서전 속에서는 그 자산 증식과 국가적 선이 일치한다고 줄곧 묘사한다. 자신으로 인해 국가와 금융 시장이 더욱 건전해졌다고 말이다. 또한 아내 밀드레드의 정신병력에 대해서는 하나도 묘사되지 않는다.


 이제 독자들은 궁금해진다. 무엇이 진실일까. 밀드레드는 정말 정신병이었을까?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실제로는 어땠을까? 만약 정신병이 아니라면 왜 소설 속에서는 정신병으로 묘사한 것일까? 앤드류가 대공황을 일으킨 것이, 혹은 적어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맞을까? 독자는 급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말이다.


 3부는 누군가의 회고록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앞선 자서전을 쓴 작가다. 앤드류 베벨이 사망하고 그의 집이 박물관이 되면서, 자서전 작가는 수 십 년 전을 회상하며 그 박물관을 찾는다. 자서전 작가는 어떻게 베벨의 자서전을 쓰게 되었는지를 회상한다. 그 회상을 통해 앤드류 베벨이 자서전을 쓸 때 밀드레드의 여러 특징들을 제거하고 (그 당시의) 여성상에 딱 맞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점을 폭로한다. 자서전 작가는 그런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으며, 그리고 ‘진짜’ 밀드레드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한다. 이제는 박물관이 된 베벨 부부의 집에 방문해 여러 자료를 보다가, 밀드레드의 일기를 훔쳐서 가지고 나온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독자들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자서전 또한 진실이 아니다. 자서전에 나왔던 부부의 에피소드는 자서전 작가가 창조해낸 것이었다. 도대체 밀드레드는 어떤 인물일까? 무엇이 진실일까? 독자들은 마지막 이야기로 달려간다.


4부는 3부에서 자서전 작가가 훔친 밀드레드의 일기다. 밀드레드 생의 후반부, 병세가 짙어졌을 때의 일기다. 이 일기 속에서 많은 부분이 폭로된다. 앤드류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성공적인 투자는 사실 밀드레드가 주도한 것이었다. 앤드류가 사람을 매수하여 주가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난다. 밀드레드는 정신병이 아닌 암이었으며, 죽어가면서도 앤드류에게 투자 조언을 남길 정도다.


 자, 그렇다면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을까? 밀드레드는 정신병이 아니었고 앤드류는 그런 부인의 능력을 이용해 성공한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후련하게 결말이 지어질까? 그렇지 않다. 4부의 일기는 투병을 하며, 모르핀을 맞아가며 쓴 것이다. 거기다 남편이 읽지 못하도록 암호처럼 쓰여 있었기 때문에 3부의 자서전 작가가 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과연 온전한 자료일까? 밀드레드가 진짜 정신병이고, 일기는 모두 상상이며, 앤드류는 부인이 정신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을 없애기 위해 자서전을 그렇게 쓴 것일지도 모른다. 다 읽고 나면 혼란에 빠진다. 무엇이 진실일까. 작가는 묻는 듯하다. 무엇을 믿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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