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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나무 Oct 04. 2020

힘내주세요. 선배님

19년째 교사가 선배 교사에게 드리는 부탁

많은 교사 원격 수업에 왜 소극적인지 19년째 초등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격수업은 교사가 원한 게 아닙니다. 원격수업은 교육부의 결정에 따라 단계별로 시행되었지 교사가 먼저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미리 원격수업을 적극적으로 한 교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원격수업을 시작했습니다. 4월 중순까지 휴업이 이어지다 마지못해 원격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했을 뿐입니다.

아직 얼굴도 못 본 학생들에게 연락하면서 온라인 교실(e학습터, EBS 온라인 클래스 등)로 불러 모았고, 수업 영상을 링크 걸기 시작했죠. 그런대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동료 교사들이 함께 자료를 찾고 일을 나누어서 하니까 할만했습니다.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긴급 돌봄 학생들이 학교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담임교사와 대면 수업이나 담임교사의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담임은 교실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 긴급 돌봄 교실에서 긴급 돌봄 도우미(임시 고용)의 도움을 받아서 원격수업에 참여하는 형식이었죠. 긴급 돌봄 학생들을 담임이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 시간에 교사 혼자 교실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 혼자 이 아이들을 교실로 불러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학교 동료 교사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개학 이후 전 국민은 학교를 주시했습니다. 과연 원격수업이 가능할까?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어느 학부모는 국민청원을 통해 허술한 원격수업을 질타했습니다. 이 청원의 요지는 교사가 교실에 혼자 있으면서 무엇을 하는지 묻는 것입니다.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긴급 돌봄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온라인 교실에서 피드백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2360


원격수업에 대한 불신은 교사에 대한 불신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원격수업이 교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교사에 대한 불신을 끊을 수 있는 기회라고 봤습니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니까요. 원격수업을 훌륭히 실행한다면 어떠한 전문직보다 교직의 전문성을 인정받을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원격수업에 대한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합니다. 원격수업의 질에 대한 설문 결과 교사는 만족스러운 반면 학부모는 불만족이 더 많다는 점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학교의 원격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교가 관료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시키면 하는 관료 조직이 된 거죠. 교사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보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교사 스스로 자율적으로 하기에는 교직 환경이 녹록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학급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학교장뿐 아니라 학급이 비교될까 걱정하는 동료 교사의 눈치도 살펴야 합니다. 이런 환경이 교사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교직에 오래 몸담을수록 수동적 태도가 몸에 배는 건 저만의 느낌일까요?

관료조직의 또 다른 특징인 '튀면 안 된다'도 한몫합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튀면 동료 교사의 눈총을 받습니다. 특히 경력 많은 교사는 자기만의 패턴이 있는데 이걸 고치거나 넘어서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내가 잘 모르는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는 걸 싫어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방식으로 해도 아무 문제없기 때문입니다. 20년 이상 나에게 최적화되고 검증된 교육방식을 바꾸는 건 모험이고 귀찮은 일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에게 원격수업은 모험이고 다소 귀찮기도 했으니까요.


원격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선배교사들이 특히 당황했습니다. 전혀 해보지 않은 방식, 내가 잘 모르는 분야와 생소한 용어 등.... 어찌할 바를 몰랐고, 학교 내에서도 원격수업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4월에 교육부 지침이 내려오고 원격수업을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선배교사는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원격수업의 핵심을 살피지 못한 채 그 껍데기만으로 판단하게 되고 원격수업에 대한 편견이 단단해졌습니다.

원격수업은 최신 디지털 기술을 잘 알고 다루어야 한다는 편견이 선배교사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파커 J 파머는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은 테크닉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온다. 나의 수업 방법이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테크닉 때문이 아니다.  교사로서의 재능은 결국 학생들과 함께 춤 출수 있는 능력,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가르치고 배우는 상황을 공동 창조하는 능력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들을 믿어주고 또 그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나의 수업 방식은 통할 것이다.  


원격수업의 다양한 수업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 수업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온라인 수업 집중 전략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의 기술적인 부분도 익혀야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부분이 20년 이상된 경력 교사에게는 생소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그 풍부한 경험이 온라인 수업에서는 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기를 서툴게 조작하고, 기능을 찾거나 적용하는데 헤매는 모습에 좌절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춘다면 온라인 수업의 악순환은 끊을 수 없습니다. 지루한 온라인 수업은 수업의 질과 교사의 자존감을 함께 끌어내릴 것입니다.  

선배교사가 앞장서서 온라인에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온라인 수업 방법을 찾고 실행하며 후배 교사들과 소통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온라인 수업에서 소외된 학생들과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는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래의 신문 기사 내용을 보면 교사 급여의 평균치를 근거로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나라 교사 급여가 높은걸로 보여줍니다. 제 생각에는 교직경력 20년이 넘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교사에게는 박봉이죠.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09087357i

다만 20년 이상의 경력 교사에게는 적은 보수가 아닙니다.

교사는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업체나 자영업자보다는 안정적으로 퇴직할 때까지 호봉에 따라 상승된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20년 차(만 45세 기준)의 경우 퇴직할 때까지 17년 동안 상대적으로 낮지 않은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앞으로 쉬엄쉬엄 가르치면서 급여를 받는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20년 차 이상 교사의 역할이 미미한 게 현실입니다.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뿐 아니라 교직에 대한 열정도 적고, 특히 갓 교직에 들어온 신규 교사들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지 못합니다. 멘토는 아니더라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은 저런 교사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학교에 훌륭한 선배교사가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은 건 왜일까요?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신규교사 시절에 선배 교사들을 보고 배웠지만 정말 교사로서 멘토가 되는 분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회식 때마다 꼰대 선배는 만나기 쉬었습니다.

현재 저는 19년째 교사입니다.  20년 차 꼰대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가르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배교사가 앞장선다면 교직은 전문직으로서 당당해지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힘내주세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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