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뉴웨이브 2024 김현희 해금
가냘픈 듯 우아하고, 때론 강인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정교한 소리가 무대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번져나간다. 부드러운 능선과 같은 어깨와 해금을 움켜쥔 손, 눈을 감고 연주에 심취한 해금 연주가 김현희의 손길에서 탄생한 소리에 대한 인상이다. 해금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전통의 동시대성과 해금의 예술적 확장을 고민하고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만들어왔다는 그가 보여줄 음악 세계는 청중에게 어떤 감각을 선사할까.
수림뉴웨이브 2024는 상·하반기에 나누어 매주 한 명의 전통음악 연주가를 선정해 공연과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기계 도움 없이 악기가 내는 소리 자체만을 감상할 수 있다는 묘미를 누릴 수 있는데,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는 중견 전통음악 연주가들로 꾸려져 있다고 하니 각자 어떠한 내공을 지니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해금은 명주실로 만들어진 줄을 악력으로 조절하면서 미분음을 낸다. 쥐는 대로 세상의 모든 음을 낼 수 있다고. 단선율의 악기라 환경이 받쳐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 있겠지만, 이날 무대에서 해금 하나로도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수면 위로 올렸다. 소극장 규모고 좌석 위치에 따라 음량 차이는 있어도 그 소리를 충분히 감각할 수 있었기에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해금에 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정확한 지점은 아니고 얼추 표시한 것인데, ‘이런 건 안 되지 않아?’라는 답습을 뛰어넘기 위해 2마디를 1주일이나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체화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과정이 그려졌다.
수림뉴웨이브 2024 추천위원이자 거문고 연주가인 김준영의 능숙한 화법과 유머감각이 이날 대화를 빛내주었다. 김현희 연주가와는 대학 시절 선후배 사이라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더욱 편안한 분위기였지 않나 싶은데, 진중하면서도 여유롭고 때론 티격태격하는 웃음기 서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누군가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고, 또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이 쌓아온 추억의 조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귀한 것일 테니.
이번 공연의 제목인 《작은 목소리》가 어떻게 지어졌을지도 궁금했는데, 대학 시절 여럿이 즉흥적으로 모여 합주했던 집단의 이름이 바로 '작은 목소리'였다고. 언젠가 동일한 이름의 공연을 올려보고 싶었다는 그의 소원에 내가 자리할 수 있어 영광스러웠던 마음. 공연 소개 글 속 ‘삶뿐만 아니라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의 지속적 실천은 반복적 행위를 통해 발현되는 작은 목소리의 빛남을 알아채는 일이 아닐까.’라는 문장들에 공감했다.
차갑고 논리적이면서도 정확한 연주가 그의 주된 특징이었으나 어느 순간 촉촉한 감성이 더해지는 연주를 구사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샀다는데, 이에 대해선 어떤 사연이 담긴 것이 아니라 그저 노력의 결과였다고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보통 해금하면 하이톤의 쨍한 소리를 떠올리기 일쑤지만 김현희 연주가는 어릴 때부터 추구하던 소리의 이상향으로 저음의 따스한 소리를 갈망해 왔다고.
장단 없이 산조를 진행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지만 해금 독주로 진행되면서 세세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 오히려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금 독주 상령산+헌천수>를 한데 엮은 연주에 이어 <서용석류 해금산조>에선 소박하면서도 본연의 소리 그대로 풍부하게 드러내는 다양한 음정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연주곡인 이태원 작곡의 <줄놀이 – 어름>에서는 외줄을 타는 광대놀음을 묘사하고 있었다. 줄 위를 뛰어다니는 듯 해금의 역동적인 연주가 귀를 사로잡았는데, 김현희 연주가는 이 연주에서 어떤 선율이 들렸다면 성공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빠른 박자로 긴장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여백을 준다. 이날 연주 중 가장 집중하며 들었던 곡이고, 노련하게 곡을 끌어나가는 힘이 느껴져서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