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뉴웨이브 2024 김화복 거문고
“역시 현금이 좋네요!”
거문고 연주가 김화복과 그의 오랜 친구인 가야금 연주가 김혜림 그리고 타악 연주가 최영진이 함께 한 <현금현금(現今玄琴)>을 끝으로 10월 두 번째 목요일 수림뉴웨이브 공연은 성황리에 종료됐다.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 사이, 어느 중년 신사의 익살스러운 소감 덕택에 모두가 웃음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 현금(Cash)보다 짜릿한 현금이었기를 바라며!
가장 현명한 자는 현재를 누린다
공연의 시작은 영산회상의 진수를 느끼기 좋은 <하현도드리>와 AI를 이용해 김화복 연주가가 처음 작곡했다는 <령초>를 연달아 들려주었다. 안정적이면서 단조롭게 들리는 소리와 무던해 보이는 움직임, 그 이면엔 고도의 집중력으로 감각을 세우는 연주가의 숨죽인 분투가 존재했을 테다. 2곡의 연주 이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는 김화복 연주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생각에 확신을 가졌고. 곡과 곡의 사이 쉬어가면서 진행된 인터뷰에 땀을 닦으면서도 긴장해 쉬이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되레 진솔해 보였다. 여기서 ‘령초’는 그의 서예 스승이 정진하라며 지어준 김화복의 호이자, ‘처음 소리’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법.
거문고로 오토바이를 타자! 회색 빌딩 숲이 우거진 도심 속 도로 위에는 빽빽하게 자동차들이 대기 중이고, 초록빛 보행신호에 따라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하디흔한 우리의 일상이다. 이번 공연 곡 중 <9 to 5>가 가장 듣기 즐거웠는데, 이는 김화복 연주가가 환경 관련 연주회에서 선보였던 곡으로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들을 법한 소음과 빛 공해를 표현했다고. 거문고와 장구, 심벌, 윈드차임 등 각종 타악기의 만남으로 그려낸 도시의 일상이 끝날 듯 끝나지 않아 재미있었다. 특히 도입부에서 거문고 머리의 좌단을 술대로 두드리던 주법으로 탄생한 소리도 신선했다.
이번 공연의 제목이자 마지막을 장식한 곡, <현금현금(現今玄琴)>은 지금의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뜻! 산조라 하면 정형화된 장단과 선율이 전부라 여겨지겠지만 옛 산조의 특징인 즉흥성을 부각하고, 과거에 머무른 전통이 아닌 현재와 공존하며 발전하는 현재의 거문고를 선보이는 무대였다. 묵직한 거문고로 시작되더니 “어흣!” 하는 추임새 이후 가야금이 가세해 연주를 이어간다. 젬베로 경쾌한 진행을 보여주다 징의 긴 여운을 활용하기보다는 둔탁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소리를 다뤄내는 타악 기법도 흥미로웠다. 휘모리장단과 단모리장단을 넣어 속도감 있는 흐름을 느끼기 좋았는데, 연주가 3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화합하는 모습은 언제나 멋진 장면이다.
그대라는 사치?
예술은 건강한 삶을 위한 마음의 양식!
김화복 연주가는 중학생 때부터 예술 활동을 시작했으나 서른 중반부터는 문득 이러한 활동이 사치인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는데, 그 생각을 옆에서 바로잡아준 사람은 그의 서예 스승. 급한 성격을 눌러보고자 시작한 서예는 시작한 지 5년 만에 큰 상을 받게 해줄 정도로 그의 삶에 비중 있는 활동이 되었다. 빠르게 때론 느리게, 굵거나 혹은 얇게, 어떨 때는 텅 비워진 느낌을 내기도 하는 등 서예 스승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던 모습에 김화복은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거문고를 연주할 때도 기술에만 집중해 왔는데 서예로 얻은 깨달음 덕분에 음악 활동에서도 더 넓게 보는 통찰력을 기르게 되었다고.
그는 기존에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환경 관련 음악회를 열기도 하면서 그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환경문제, 세계 내전 이슈까지 엮어낸 김화복의 음악 세계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공존하길 바라는 평화의 이상향이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