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착역'을 보고 나서
여정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영화는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4명의 여중생이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방학 숙제를 해결하려다 닿은 낯선 장소에서 평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담아낸 기록이다. 배우들은 자유롭게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독은 그들의 생생한 행동과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세상의 끝을 찍으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의 끝을 카메라에 담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끝이라는 주제를 담은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다. 바다나 벽을 떠올리던 아이들이 그건 너무 의미 부여하는 느낌이잖아, 하고 말할 때나, 천안역의 하늘이나 신창역의 하늘이나 그게 그거라고 말할 때, 이들은 세상의 단면을 담아내는 사진이 그 자체로는 드러내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무심하고도 명확하게 짚어낸다.”
- 손시내 평론가
실존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으며, 그것에 맞게 대상을 적절히 프레임 안에 배치한다. 또한 프레임 안과 밖을 넘나들며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모두에게 공통인 사항은 아니겠지만 생각을 담고 표출할 창구가 필요했던 나에겐 '사진을 한다'라는 말로 축약된 일종의 루틴이었다.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내 안의 여러 자아와 100:1까진 아니고 대충 10:1로 싸워본 듯. 나를 비롯한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거기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풋내 나지만 나름의 기교를 섞어본 정물 과제 밀착본 위, ok 표시와 함께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그 문장. ‘두 사람이 서로 잘 모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촬영 중 발생하는 우연적 순간을 영화에 반영하는 것’에 두 감독이 공동연출의 묘미를 느낀 것처럼 문장의 의미를 접한 내게도 그런 전율이 일었었다.
“세상의 낯선 부분을 용감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세상의 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손시내 평론가
살면서 낯선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든다. 모험을 떠날 기회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영화를 보며 수없이 낯선 공간에 나를 밀어 넣으며 느꼈던 것들이 떠올랐다. 소란했던 시절과 불완전한 나까지, 환장의 콜라보 같아도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아서 희망을 논할 수 있다는 궤변 같은 논리를 세워본다. 완벽한 결말보단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과정에 집중하고 싶은 지금, 나를 찾아온 이 영화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