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w Mar 05. 2024

앨리스 달튼 브라운

3-1 조명계획 레포트


처음에는 큰 기대없이 예매를 했었다. 그러다 예매하기전 전시 포스터에 써 있는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빛이 머무는 자리"

작가가 말하는 빛이 머무는 자리는 어떤 공간일까?

어떻게 빛을 표현하려 했을까?

여러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래도 공간을 디자인하다 보면 '빛'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빛이 머무는 자리라는 문구를 보며 '빛'이라는 요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관람하러 갔던 것 같다.


처음 입장했을때는 여느 다른 그림 전시회랑 별반 다를다 없는 느낌을 크게 받았던 것 같다.

사진같이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며 드로잉 실력에 대한 감탄에 그칠 뿐 한 그림 앞에 더 오래서서 감상하기엔 너무 실사화같은 그림이 거북했던 것 같다 (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극사실주의그림은 선호하지 않는다.)

여러 장소 시간대에서 목격한 빛의 모습을 그린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더 알고 싶어 최대한 그림에 대한 전시 설명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슨트를 듣지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없었음) 그림을 끝까지 보며 '아 그냥 일상 곳곳에서 인상깊게 보였떤 빛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약간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림을 실사처럼 잘 그려서일까, 빛이 가진 큰 효과덕분일까 몇몇 그림은 가만히 보고있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들게하던 작품이 몇가지 있었다. 내부 사진촬영을 금지 시킨 관계로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들 위주로 메모해둔 것을 바탕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사실 그림과 다를 수 있음)



#여름날의 휴식처


이그림은 바닥에서 반사된 빛과 기둥을 밝히는 빛고 두가지의 색채로 정의했다. 그림자가 깃든 기둥은 푸른빛이며 반사가 된 빛이 닿은 기둥은 황금빛을 띈다. 빛과 색을 묘사하는데 세심한 주의가 느껴지던 그림이었다.



#나의 창가에서


극적인 효과와 구도로 인해 왼쪽 아래에 불켜진 창문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고즈넉한 새벽 동뜨기전 혹은 반대로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의 느낌이 드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세상의 어둠과 밝음이 교차되는 직전의 시간대를 표현한 특유의 빛 표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인데 그 시간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몇분동안 서서 그림을 감상했고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던 그림으로 기억한다.



# 밤이 드리운 아카데미


이그림은 동그란 달빛이 구름 뒤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밤의 풍경이다. 올빼미형 인간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밤에 달을 바라보는걸 참 좋아한다. 차분한 달빛은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과 달리 은은하면서도 어두운 밤을 확실히 조명한다. 그런 밤의 빛과 저멀리 위치한 아카데미에 따듯한 불이 켜지고 있는 모습이 가장 인상깊게 남았다. 이그림이 위치한 공간 한편에 글이 쓰여 있던걸 그대로 메모해 뒀는데 도시를 물들이는 빛을 낮의 화려하며 활기찬 금빛, 밤의 가라앉은 차분한 보랏빛으로 정의한 부분이 그림과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다.



[ 저무는 태양은 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물들이고 뜨거운 빛속에서 세상은 잠든다. 그곳에 모든것이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움 고요 그리고 쾌락만이 있었을 뿐 ]



     

코비 한의원, 2005


사진과 같이 디테일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며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며 그림을 감상했던 기억은 남지않는다. 이전시회를 보고나서 아쉬움과 함께 언제한번 스쳐지나가면서 봤던 박상희 작가의 [도시의 밤]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홍콩 밤 풍경, 2008


이 작가의 작품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자연의 빛을 그리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과 달리 도시의 밤을 빛내는 인공조명에 관해 여러그림을 그려냈다. 인공의 빛을 계몽(enlightment : 빛을 밝히다)과 연결지어 설명하는데 밤과 낮은 단지 시간이 흐름을 알리는 구분일 뿐 인공조명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은 밤낮없이 일을 할 수 있으며 밤낮없이 놀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에 집중한다.


작가는 이러한 계몽주의의 시작으로 인공조명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기계적 장치 혹은 동력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하며 그림을 표현했다. 화려한 조명이 수놓은 도시의 밤을 관찰하며 도시라는 단어에 스스로 증식하는 욕망과 디스토피아적 우울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풍경을 도시에 켜켜이 쌓인 욕망과 일상화된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해 그림을 표현하는 과정과 그대로 연결시켰고, 그 방법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뒤 비닐시트지를 중첩시키고 도려냄으로써 마치 어두운 도시밤 위에 발려진 인공의 빛을 표현했다. 독특한 기법으로 인해서 특유의 화풍이 눈에 띄는 연작이다.


작가가 그려내려는 대상의 가치관의 표현방법이 유사하기에 그림을 사진처럼 바라보는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지만 작가의 작품을 접하며 또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차오르는 빛


그림으로만 빛을 따지기보단 전시회 전체를 통틀어 생각해보자면 상업적인 성격을 많이 띄는 전시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앨리스는 스스로를 풍경화가가 아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려온 화가라고 정의한다. 전시회를 나오며 도록을 보고 알게된점은 사실적으로 그려낸 주택 대부분의 풍경은 다른 장소의 자연적 소재가 재구성된 허구의 풍경으로 실제 풍경을 정밀히 묘사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의 표현과 재가공된 사진의 작품 경계에서 작가가 의도한 인과 자연의 관계를 포착할 수 있는 빛의 표현은 크게 생각해볼 부분이 없었다. 그렇기에 몇몇은 허구의 풍경이라 할 지라도 과정이나 결과물로만 본다면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합성된 사진에 그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이전글 르꼬르뷔지에의 5대 원칙과 모듈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