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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Jan 26. 2023

진짜보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지만,

전등을 끄자 천장과 벽면에 무수히 많은 별빛이 비치더니 곧 형형색색의 오로라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편이 사 온, 고작 20cm 안팎 크기의 우주인 모양을 한 램프가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은 별빛과 몽환적인 느낌의 오로라가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게 진짜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말에 아이는 의아한 듯 물었다. “왜요?”


“왜긴, 진짜로 이렇게 누워서 하늘에 별이랑 오로라를 보면 더 좋을 거 아니야.”


“진짜보다 이게 훨씬 더 예쁜 것 같은데.”


아이는 진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나의 말에, 천장에 펼쳐진 별빛이 진짜보다 훨씬 더 예쁘다고 응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이렇게 쏟아지는 별을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본 가장 많은 별은 강원도로 캠핑을 갔을 때 봤던 밤하늘의 별 정도일 텐데, 그것도 너무 흐릿하고 멀어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별로 수놓아진 돔과 같은 하늘을 본 적이 있다. 20여 년 전, 인도 서부지방의 사막을 여행할 때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총총 박혀있었다. 서늘한 사막의 밤바람을 맞으며 넋을 잃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 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해 그곳에 몇 번을 더 갔지만 그때 이후 그렇게 많은 별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만약 그때 그 사막에서, Star-dom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충분한, 별로 가득한 반구의 하늘을 보지 못했다면 나 역시 작은 램프가 만들어내는 별빛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이 눈앞에서, 손끝에서 펼쳐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마 전 일 때문에 만난 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생각도, 상상도 잘하지 않는다고. 잘 모르면 바로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하면 되니까 생각할 필요도, 상상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고. 스마트폰의 다양한 폐해 중 가장 큰 폐해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의 정답을 바로 알 수 있는데, 굳이 정답을 추측하거나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건 지금의 아이들에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두꺼운 백과사전을 갖고 싶어 조르고 졸라 집에 들인 적이 있었다. 백과사전 안에 빼곡하게 담긴 사진과 글씨를 보며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손에 쥔 냥 흐뭇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싶어 모르는 단어가 나오길 기다렸고, 찾아볼 것이 생기면 빨리 집에 가서 백과사전을 들춰보고 싶어 마음이 들썩였다. 그건 인터넷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초조해지고 불편해지는 마음과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오로라를 눈에 담기 위해 추운 극북의 지방에 가지 않아도 따뜻한 방 안에서 오로라를 체험할 수 있고, 도시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지 않아도 무수한 별빛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은 과연 좋은 세상일까, 안 좋은 세상일까. 언젠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상상하고 고대하며 꿈꾸던 시간을 보내온, 아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가진 나에게 그것은 그렇게 매력적인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지난가을, 아이와 인근에 있는 어린이 과학관에 갔다. 여러 체험 코너 중 하나로 디지털 드로잉을 해볼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한 번도 디지털 드로잉을 접해본 적 없는 아이는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갔다. 패드의 색상 팔레트에서 원하는 색을 선택하고 손가락으로 그리면 된다는 설명에, 아이는 낯설어하면서도 패드에 손끝을 갖다 댔다. 아이는 팔레트에 손가락을 대고는, 자기 손끝을 쳐다봤다. 패드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니 화면에 아이가 선택한 색상의 선이 나타났다. 아이는 다시 자기 손끝을 쳐다봤다. 팔레트에 손가락을 대고, 그림을 그리고, 자기 손끝을 쳐다보길 몇 번 반복하는 아이를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지만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실재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그날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감각,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눈앞의 구체적인 세상을 아이가 더 많이 만나고 느끼면 좋겠다. 디지털 신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보다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더 많이 느끼고, 그리고,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진짜와 진짜가 아닌 것의 구분이 더 모호해지기 전에, 실재와 가상의 개념조차 흔들려 뒤엎어지기 전에.

설령 디지털 신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훨씬 더 진짜 같고, 더 아름다울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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