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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Aug 16. 2022

좋아하는 마음

 얼마 전 우주가 같은 반 여자 친구 둘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에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고 선언을 하는 통에 한동안 집에 그 누구도 초대할 수 없었던 터라 우주의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초대’를 성사시키리라 마음을 먹고 우주와 함께 초대장을 만들었다.

우주는 초대장에 삐뚤빼뚤한 세모와 네모로 집을 그리고 자기 이름을 그려 넣었다. 나는 ‘우주 집에 초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적었다.  초대장이  아이들 엄마에게  전달된다면 연락이  것이었다.     


“우주야, 이거는 시은이 꺼, 이거는 라율이 꺼. 구분할 수 있겠어?”

“응. 시은이는 노란 리본, 라율이는 빨간 리본.”

“맞아. 내일 유치원 가서 친구들한테 주는 거야.”     


발그레한 볼을 하고 알겠다고 고개를 힘 있게 끄덕이던 우주는 다음 날 아침,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냥 가방에 넣어 놓으면 안 돼?”

“가방에? 왜? 직접 주기 부끄러워?”

“….”

“근데 우주가 친구들 가방을 알아?”

“응! 가방에 사진이 다 붙어있어!”

“그렇구나. 그러면 가방에 넣어주고 와.”     


친구한테 초대장을 내미는 게 부끄러워, 아침에 일어나서 계속 그 생각으로 고민했을 우주는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친구들 가방 앞에서 서성일 우주를 생각하며 담임 선생님에게 알림장을 보냈다. 우주가 친구를 초대하고 싶어 초대장을 만든 이야기와 초대장을 직접 주기 부끄러워 가방에 넣어두기로 했단 이야기, 그래서 아마 오늘 우주가 친구들 가방 옆에서 서성일 것이니 이해해달란 이야기를 덧붙였다. 친절한 담임 선생님은 우주를 도와 친구들 초대장을 가방에 넣어주고 엄마들에게도 따로 연락을 해주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는 우주의 유치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약속을 잡고 모이기까지는 그로부터 3주가 걸렸다. 우주보다 나와 우주 아빠가 오히려 더 설레어 그날을 기다렸다. 모임 전날부터 간식거리를 사고 집을 치우고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우주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난감을 치우고 자기 방을 정리했다.      


딩동.

첫 번째 친구가 도착했다. 이날 모임의 호스트답게 우주가 현관문 앞에 가서 친구를 맞이했다. 두 아이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서로 엄마 등 뒤에만 숨어서 빙빙 돌다 이내 곧 함께 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딩동.

두 번째 친구가 도착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두 번째 친구가 모습을 보이자 우주의 얼굴에 도저히 감출 수 없는,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미소가 번졌다.

아, 우주가 이 친구를 좋아하는구나. 아마 우주의 얼굴을 봤다면 누구나 알아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친구를 초대하고 싶어 다른 친구도 초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우주의 얼굴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빨리 피어나는 것이라는 걸, 그날 우주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유치원 시절, 키가 큰 한 남자아이를 좋아했었는데, 그 아이와 함께 찍힌 사진을 초등학생이 돼서도 종종 보곤 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모두 잊어버렸다. 아이일 때의 일을 다 잊고 아이는 ‘아직은 잘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근데 시은이는 뭘 좋아해?”     


친구들이 가고 뜬금없이 나에게 시은이가 좋아하는 걸 묻는 우주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궁금해진 아이의 얼굴이 왠지 낯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 특성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주는 좋아하는 친구가 수십 번 바뀔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이 친구 때문에 속앓이를 할 것이고 우정과 사랑이 고민의 전부를 차지하는 때가 올 것이다. 많은 시기 친구와 연애 이야기가 내 일기장의 전부를 차지했던 것처럼.

언젠가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겪고 있을 아이만의 괴로움과 기쁨, 스트레스와 환희, 아이가 통과해 나갈 그 모든 것들의 시간을 그려본다. 아이가 자기에게 주어지는 작고 큰 관문을 잘 통과해나가기를 바라며, 그렇게 커가는 아이를 한 발자국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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