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와보니 환자였던 이야기
뻔하지만, 증상 완화에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하여
매일은 아니지만 너무 힘들때마다 일기에 붙잡고 감정을 토해냈다.
정말 날라가는 글씨로 매일 힘들고,
매일 사라지고 싶고,
매일 모든 것을 원망하는 글을 적었다.
근데 너무 웃긴건,
그럼에도 맨 밑에는 항상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치고 힘든 하루였지만 버텨내서 대견해"
"정신 차려보자"
"내일 병원을 가서 도움을 구해보자"
등등,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한 톨만큼의 희망을 잡아보려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문구들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다.
25년 1월 15일 퇴사하자.
퇴사를 결정하니 갑자기 마음 속 누르고 있던 돌이 날아간 것 같았고,
모든 걸 체념하게 되었다.
그냥 다 포기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사회에서 생각하는, 주변 또래가 살아가는 착실한 길을 벗어나는 것에 두렵지가 않았다.
그 길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쓰고 바득바득 버텼던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그렇게 마음을 놓고 1월 후련하게 떠날 날 만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알바생과 일찍 점심을 먹고 혼자 앉아있던 날 상무님이 나를 불렀다.
이미 몇년 전부터 상무님에게 계속 들이받던 나였기에
내가 다른 업무 하고 싶었던 것도 알고 계셨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태껏 모셨던 상무님 중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앞에 여러 쓸데없는 소리를 하더니
다른 계열사 이동을 제안하셨다.
처음 듣는 소리였고, 워낙 빡센 조직과 빡센 팀장님이 계신 곳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어 처음에는
탐탁치 않았다. 옮길 생각은 1도 없었다.
그 다음날 오전 반차를 내고 치과를 가서 반성의자에 앉아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 어차피 1월에 그만 둘건데, 가서 3개월만 버티다 그만둬도 나중에 다른 데 취직할때 이력서에 한줄은 더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손해 아니잖아?
3개월만 더 버티다가 퇴사하자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 마취를 다 느끼면서도 머릿속이 깔끔해지더라
아닌가 오히려 마취를 하고 있었어서 머릿속이 단 하나의 생각을 남겨두고 번잡스러운 것이 다 정리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동을 결정하고 또 다른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