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과 허브 향 찬란했던 남프랑스
한국에 짝퉁 프로방스가 많다. 지자체가 테마파크처럼 만든 프로방스 마을이 있는가 하면 정원에 라벤더 쫙 심어 놓고 한국의 프로방스라고 선전하는 곳도 있다. 당최 정체 모를 프로방스풍 OO도 많다. 카페, 인테리어, 숙소 등등. 짝퉁과 아류가 많다는 건 원본이 그만큼 가치가 높다는 뜻일 테다. 루비퉁, 에르메슥 같은 브랜드처럼. 지난해 10월, 출장차 프로방스를 다녀왔다. 파주나 담양 프로방스가 아니라 비행기 타고 파리를 경유해서 남프랑스에 있는 진짜배기 프로방스를 만나고 왔다.
프로방스는 넓다. 알프스 남쪽부터 지중해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지방을 일컫는다. 지중해 쪽이라면 10여년전에도 니스, 칸 이런 동네를 가봤다. 근데 프랑스인들은 그 동네를 진짜 프로방스로 안 쳐준다. 이 사람들, 한국 프로방스 마을 보면 뒷목 잡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중의 진짜 프로방스는 어디란 말인가. 바로 작년에 갔던 보클뤼즈(Vaucluse) 지역이란다.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가 물결을 이루고, 최고급 올리브와 로제 와인이 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 마을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 동네다. 서쪽에는 론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뤼베롱 산이 버티고 있는 시골.
마르세유 공항에서 가이드 크리스토프를 만나 북쪽으로 이동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루르마랭(Lourmarin). 프랑스 발음으로는 루흐마헝. 소설가 카뮈가 살던 동네다. 1957년 <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카뮈는 상금으로 루르마랭에 집을 샀다. 불과 2년밖에 못 살고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마을은 지금까지 작가를 기린다. 생가에는 카뮈의 딸이 살고 있어 들어갈 순 없었다. 대신 카뮈의 단골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묘소를 방문했다. 이름과 생몰 연도만 적힌 작가의 묘는 공동묘지에서 가장 소박해 보였다. 작은 조약돌 하나 얹어두고 나왔다.
프로방스는 1년 중 300일이 ‘맑음’일 정도로 날씨가 쨍하다. 카뮈가 루르마랭에 정착한 것도 그의 고향 알제리를 닮은 날씨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파리에서 작가 생활을 하며 날씨가 늘 못 마땅했을 테다. 멀리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에게 루르마랭의 바삭바삭한 10월 햇볕은 마냥 따사롭고 고마운 존재였다. 카뮈도 60여년 전 이 햇볕을 만끽하며 마을을 쏘다녔겠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기도록 충동한 게 햇볕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역시 생은 모순 투성이다.
루르마랭을 나와 ‘마스 호노랏(Mas honorat)’이란 농장을 찾아갔다. 잠도 자고 농산물 수확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코로나 시국에도 빈방이 없을 정도로 성황이란다. 농장주 아저씨를 따라 잘 여문 올리브와 끝물에 접어든 포도, 무화과 등을 땄다. 보통 나무 한 그루에서 올리브유 1ℓ가 나온단다. 모닥불 켜고 저녁을 먹은 뒤 창 너머 뤼베롱산이 보이는 아담한 방에 몸을 뉘었다. 고흐의 그림 ‘올리브 나무 아래서’ 속에 드러누운 기분이었다. 농장과 주변 풍광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알바생이나 워킹홀리데이 일꾼은 안 쓰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워홀 나이 제한은 훌쩍 넘겼지만.
이튿날에는 ‘페르메 레 칼리스(Ferme les callis)’ 농장을 찾았다. (이거, 뭐 농장 특집인가.) 숙소와 농장 체험을 겸하고 음식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여기 묵으면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수확하고 허브를 따서 차로 끓여 마신다. 점심으로 순무 샐러드와 인도네시아 볶음밥인 나시고랭을 프로방스식으로 해석한 음식을 먹었다. 물론 야외 테이블에서. 현미와 대파, 고수, 껍질콩을 볶아낸 밥은 동남아와 프로방스 향기가 공존하는 묘한 맛이었다. 프로방스 사람은 제 고장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두시간 내내 음식과 식재료 자랑을 들었다. 쨍한 햇볕을 만끽하며 느긋한 사람들과 어울리니 프로방스식 행복에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이후 일정이 있었지만 그냥 모두 째고 일광욕을 즐기고 마을 산책이나 하고 싶었다. 그래도 일정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출장의 현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고르드(Gordes)’, 아비뇽 유수 때부터 교황이 마셨다는 와인의 산지 ‘샤토네프 디 파프(Chateauneuf du pape)’ 같은 유명한 동네를 둘러봤다. 고르드는 근사하긴 했으나 그냥 딱 그림엽서 같았고, 샤토네프 디 파프에서는 세계적인 와인을 맛보고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술맛을 잘 모르니까. 다만 샤토네프 디 파프에서 재미난 한 순간이 있었다. 현지 관광사무소 직원이 마을을 안내해줬는데 약속 장소에 허름한 차림의 배 나온 아저씨가 함께 있었다. 지역신문 기자였다. 펜데믹 이후 아시아 기자가 마을을 방문한 게 처음이어서 취재하러 나왔단다. 얼마나 뉴스거리가 없는 동네인 건가, 이곳은. 어딜 가나 기자라는 작자들은 심드렁한 표정에 옷차림이 허름하다는 공통점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자전거 타고 프로방스를 질주했던 순간은 꿈같았다. 가이드 크리스토프는 프로방스의 자전거 전문 여행사 사장이다. 그와 함께 전기자전거를 타고 보클뤼즈의 작은 마을을 둘러봤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농로, 마을길을 달리며 보석 같은 풍광을 만났다. 르 바루, 수제트 같은 중세 마을도 예뻤지만, 깊은 가을 울긋불긋 물든 포도밭 옆을 달리는 시간 자체가 황홀했다. 길섶에 타임, 로즈메리 같은 허브가 많아 달리는 내내 코끝이 향기로웠다. 보랏빛 라벤더 물결을 못 봤지만 아쉽지 않았다.
마지막 밤은 ‘봄 드 브뉘즈’란 동네의 와이너리에서 보냈다. 와이너리에서 하룻밤이라니, 술에 환장하는 이라면 진탕 와인을 마실 기대에 부풀었겠으나 나는 그저 피곤했다. 한데 노부부의 환대에 완전히 마음이 녹아버렸다. 장 뤽, 코린 부부와 저녁을 함께 했다. 닭고기 버섯 조림, 감자 수프는 좀 많이 짰다. 그러나 꾸밈없는 집밥이었기에 황송한 마음으로 배불리 먹었다.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의 코스 음식이야 돈만 있으면 사 먹겠지만 이렇게 수수하고 사람 냄새 진한 프로방스 식탁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고 부부는 영어를 못하니 대화가 어려웠다. 그래도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장 뤽 아저씨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만든 와인을 한국에 잘 팔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얄팍한 사심을 담은 질문이 아니었다. 평생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심정이었리라 해석했다. 식사를 마치고 포도밭 가운데 자리한 통나무집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에는 숙소에 놀러 온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아침을 먹었다. 역시나 말은 안 통했지만 빵을 쪼개 먹고 커피를 따라 주며 눈빛으로 대화했다. 프로방스 사람들이 좀 웃기는 커피 문화가 있는데 아담한 잔이 아니라 국그릇처럼 큰 사발에 커피를 담아 두 손으로 들이킨다는 거다. 크리스토프는 “우리 아버지도 저런 사발에 커피를 마시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웃었다. 오랜만에 낯선 이들과 온기를 주고받은 시간이었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여행에서 만나는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이리라. 지금까지도 고급 와인이나 드라마틱한 절경보다 프로방스의 공기, 사람 향기가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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