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무, 크라임 이펙트
씁쓸하다. 범죄가 일어나야만, 그로 인해 누군가 희생되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잘못됨을 깨닫고 부족한 제도와 환경을 보완한다. 우리 역사는 쭉 그래왔다.
예수와 소크라테스 재판, 십자군 전쟁, 아편전쟁, 미란다 혁명, 9.11 테러까지 인류는 범죄를 통해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했다. 세계사는 범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범죄들에는 늘 희생자가 있었다.
진정한 성경의 의미를 전달하고 젊은이들을 깨우치려 했던 예수와 소크라테스.
그들이 희생됨으로써 지금 우리는 그 철학과 진리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에르네스토 미란다로 인해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미란다 경고문'이 탄생했다.
하지만, 열여덟 살 소녀 패티가 그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9.11 테러로 인해 테러범죄에 대항하는 애국 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3천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제도와 시민들의 경각심에 영향을 준 사건들이 있지 않은가?
민식이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처럼 말이다.
관련자들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난 뒤 남는 것은 무엇일까?
"관련 제도, 법률 제정 그리고 시민들의 생각 변화" 이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에는 그런 참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한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남겨진 유가족들이 있다.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남아있다.
희생자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대안이 필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범죄가 일어난다."
두 손 모두 맞대어야 손뼉 소리가 나듯 말이다.
한쪽 손은 범행 동기이고
다른 한쪽은 범행 기회이다.
이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 동기가 있는 범죄자라도 철통 보안인 한국은행을 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근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 범행 동기가 먼저인가? 범행 기회가 먼저인가?"
처음에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시시콜콜 기회를 엿보다가 기회가 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근데, 때로는 기회가 동기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도의 생각이 아예 없던 사람도 보안 허술한 가게를 보면
도둑질하고 싶은 동기가 올라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의미 없는 논쟁인듯하다. 어느 손이 먼저 올라오던 결과적으로는 두 손이 맞아 손뼉을 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는 무조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범행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게 모든 상황을 감시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도 사람인데 어떻게 갑작스러운 테러와 범죄를 전부 막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희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이다.
특히 전쟁에서 우리는 희생에 관대하다. 전쟁통에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면죄부를 주듯
그래 그럴 수 있어 안타깝네.. 하며 넘어간다. 1차,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사건..
이게 범죄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
명백한 살인죄이다. 전쟁이라는 비상사태를 들이밀어 무마할 것이 아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포장해 추모할 것이 아니다.
또, 문화와 전통을 핑계 삼아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이 승낙한 결혼이 아니라며, 전통에 어긋나는 결혼이라며
자기 자식을 돌팔매질로 숨지게 한 부모들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예측 불허한 범죄를 막기는 어렵지만,
전쟁과 구시대적인 문화 중심주의 등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희생은 우리 의지로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더라도 범죄에 관대해지지 말자.
살인은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파렴치한 범죄일 뿐이다.
Pg.264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Pg.300
범죄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풀어낸 책이니 관심 있으면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