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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Nov 21. 2023

3 ‘완벽한 엄마’라는, 완벽한 허상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칼로 베인 것처럼 아프다. 지금은 11살 아들의 아기 시절, 나는 아이를 돌보면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되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힘들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엄마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가 좋았고, 주변에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 즐거웠다. 당시 한 리빙 잡지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야근이 잦은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선배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박사 과정 학생이던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석사 진학을 할 때도 이 주제를 깊이 있게 ‘취재’한다는 생각으로 교육대학원에서 발달심리학을 공부했다. 여러 논문과 이론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름대로 ‘육아의 정답’을 머릿속에서 구성했나 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상황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았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육아의 정답’이 있었는데, 나는 이를 실제 아이와의 관계에서 구현해낼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답안지에 맞춰서 꾸며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아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나와 억지로 꾸며낸 가짜 나를 정확히 구분했다. 가끔 나는 묘하게 부자연스러워졌고, 아이는 이런 내 모습을 무서워했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서 먹던 5살 아이가 무심히 던진 한 마디.


“엄마, 나는 엄마가 가끔 어색해.”


6년 전 일이지만 지금 이 문장을 적으면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나는 이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완전함을 꿈꿀 수록 그 완전함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와 아이와의 관계는 불완전하거나 부자연스럽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악순환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내 마음 속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뒤집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아하는 건데?> 브런치북에 적는 글들은 그 사투의 잔여물 같은 경험의 조각이다.


발달심리학계 최고의 석학 앨런 쇼어(Allan N. Schore)의 말처럼 사실 초기 육아는 우뇌의 예술이다. 우뇌는 우리 자신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잠재의식, 무의식의 활동을 관장한다.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우뇌작용, 즉 잠재의식이라면 그 위를 떠다니는 서퍼가 바로 좌뇌 작용, 즉 의식의 활동이다. 내 마음은 파도 치고 싶을 때 파도 치고, 잔잔하고 싶을 때 잔잔하다. 육아와 심리학적 지식을 내 머릿속에 집어 넣어도 그것은 의식 수준의 활동일 뿐 내 무의식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봐도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를 선사할 수 없다. 서퍼가 바다의 움직임을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털썩.


2008년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존-딜런 헤인즈 박사 팀은 무의식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로 뇌과학계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의 논문 인용수는 무려 2386회에 달한다.) 그들은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인간 두뇌 자유 결정의 무의식적 결정 요인)’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의식적인 결정 순간의 최대 10초 전에 이미 전두엽과 대뇌 피질의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뇌 반응을 해석하면 60%의 성공률로 행동을 예측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지만, 먼저 무의식이 결정한 이후 의식이 이를 서술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의식을 무기로 스스로 역동하는 나의 잠재의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연애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 권 읽고 최고 인싸로 거듭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기 힘들다. 자기개발서를 수백 권 쌓아 놓고 읽어도 성공을 이뤄내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행동과 지식의 시간차, 무의식을 뒤늦게 서술하는 의식의 한계를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고 궁극적인 생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아, 내 마음은 정.말.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생물학적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그 때 비로소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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