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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Dec 01. 2023

4 잠들기 전에, 한 번 안아줘요

아들은 5살부터 처음 자기 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다. 원래 엄마가 옆에 없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엄마를 찾는 껌딱지였는데 혼자 자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참 그 답다.  


그 무렵 이사를 가게 됐는데 친정 엄마가 “상원이 방에 침대 하나 사주련?” 물으셨다. 그 말을 듣고 이 물욕 많은 꼬맹이는 침대가 탐이 나서 무심결에 “네!’라고 대답해버리고 만 것. 침대가 설치되고 막상 처음 혼자 자게 된 날 밤, 아이는 겉으로 차마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후회스러워 보였다. 그제야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자, 엄마랑 아빠랑 한번씩 꼭~ 안아줄게. 그럼 덜 무서울 거야.”  


안으면서 ‘아~~~~~~’라는 추임새를 함께 넣기에, 잠자기 전 한 번 안아주는 이 리추얼을 우리는 ‘아~~~~~’라는 고유명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상원아, 아~~~~~ 안했네.’, ‘상원아, 아~~~~~~ 하고 자야지.’ 그 날부터 11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한 번씩 포옹을 하고 잠든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니, 나와 상원이, 남편과 상원이는 포옹을 하고 잠드는데, 정작 나와 남편은 말로만 ‘잘 자’라고 말하고 손을 흔드는 것이 끝이었다. ‘아, 남편이랑도 ‘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한 달 전부터 실행에 옮겼다. 남편은 여느 경상도 남자처럼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늘 소파에 누워 서로의 다리를 포갠 채로 TV를 보던 우리 가족과는 달랐다. 남편과 처음 포옹하는 날은 서로 뭔가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하루 이틀 쌓이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다. 마음에 나도 모르게 쌓여 있던 응어리 같은 것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스킨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인간의 발달에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은 정서적 안정감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데, 이는 생후 엄마에게 안겨 있을 때 살과 살이 만났던 촉각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그냥 허공에서 내 손의 형태를 느껴보려고 하면 뭔가 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만져보면 내 손의 뼈 구조, 피부의 감촉, 살의 탄성까지 수많은 정보를 느낄 수 있다. 엄마의 살이 결국 나 자신을 깊이 알 수 있는 레퍼런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관계를 바탕으로 나에 대한 감각을 구축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2021년 타계한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뚜라나(Humberto Maturana)의 책 <앎의 나무>에 등장하는 관련 에피소드 하나.  


괴팍한 과학자들이 갓 태어난 새끼양을 몇 시간 동안 어미로부터 떼어놓는 실험을 진행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어미에게 돌려보내긴 했지만, 이 새끼양은 다 자라난 이후에도 친구들과 장난칠 줄도 모르고 그런 것을 배우지도 못한 채 동떨어져 혼자 지내게 된다. 보통 어미 양은 새끼 양을 낳으면 곧 바로 몇 시간 동안 새끼의 온 몸을 핥는데, 과학자들은 이 둘의 상호작용을 막음으로써 촉각적, 시각적, 화학적 접촉을 차단한 것이다. 


같은 포유류인 인간도 스킨십은 나 자신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정보는 타자와의 균형 있는 행동 조절을 위한 좌표로 활용된다. 유교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대한민국, 게다가 언텍트가 디폴트 정서가 되어버린 요즘이라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부터 잠들기 전 온 가족이 한 번씩 서로를 안아주면 어떨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해묵은 갈등이 저절로 해소될 수도 있겠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겨울을 보내시길 바란다 :)


P.S. 우리 가족의 스킨십 아이디어가 있으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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