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중고 문구점 Artscrap Reuse Store
일상이 조금 지루해진다 싶으면 구글맵 검색창에 Thrift store를 입력한다. 새로운 중고가게를 찾기 발견하기 위해서다. 오! 집에서 20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흥미로운 상호명을 발견했다. ‘ArtScrap Reuse Store’라는 이름의 중고 문구점이었다. 구글맵에 올라온 가게 사진들을 슥슥 넘겨 보는데, 보통의 문구점과는 전혀 달랐다. 쓰다 남은 물감과 낱장의 종이들, 다 쓴 코르크 마개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 구멍가게 같기도, 창고 같기도 한 모습에 이곳의 정체를 어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이 문구점은 일주일에 딱 3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문을 여는, 집에서 차로 17분 거리의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작은 구멍가게다. 초록색 간판에 ‘ArtScrap’이라고 적혀 있지만 넋 놓고 직진하다가는 초록색 간판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리니 좌회전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그 골목에선 집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문구점 외벽에는 조각 타일로 만든 ‘미시시피 강' 벽화가 있고, 이 벽화를 따라 조금 더 큰길 쪽으로 걸어가면 문구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밖에서는 문구점 안쪽이 잘 보이지 않고, 문도 어쩐지 꽉 닫혀 있는 것이 ‘혹시 오늘 안 하는 것 아니야?’ 싶은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딸랑-’ 문에 걸린 방울 소리가 조용한 문구점 안을 가득 채웠다. 처음 문을 연 순간 느껴졌다. ‘나 여기 자주 올 것 같다'라고.
입구에서 바로 정면으로 들어서면 작디작은 것들이 잔뜩 모여있다. 작은 장식품과 문구류가 대다수인데 이 코너의 진짜 재미는 시즌별로 바뀌는 상품을 구경하는 것! 처음 방문했을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산타, 루돌프, 눈사람 등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가득했고,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는 클로버 모양과 초록색 물건들이, 부활절 시즌에는 각양각색의 토끼가 그려진 상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최근에 들렀을 때가 마침 부활절 시즌이라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게 만드는 토끼 상품 진열대를 구경하다가 결국 토끼 모양으로 구멍이 뚫리는 펀치를 하나 사 왔다.
첫 번째 진열대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슬슬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양한 종류의 미술용품들이 있다. 중고 문구점답게 크기도, 컬러도 제각각인 단추, 비즈 같은 공예 물건들이 나름의 질서를 맞춰 통에 들어 있으며, 쓰다 남은 줄과 실, 낱장의 종이와 조금 해진 캔버스가 차곡차곡 꽂혀 있다. 한 바퀴 빙 돌아 계산대를 지나서, 조금 더 들어가면 이번엔 중고 문구류 코너가 등장한다. 어떤 물건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진열대에 쌓여 있는 바구니를 들고 샅샅이 파헤친다. 그러다 보면 쓸만한 문구를 꽤 많이 발굴할 수 있다. 가격도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 가득 담아도 10달러(1만 원) 정도 나올까 말까 해서 부담 없이 문구류를 구매할 수 있다. 더 뒤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통이 연달아 늘어서 있는데, 그 안엔 코르크 마개, 다 쓴 휴지심, 빈 치즈통, 버려진 뚜껑 같은 재활용품들이 커다란 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걸 어디에 쓰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통 위에 걸려 있는 재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귀여운 공예품을 발견하면 의구심이 사라진다. 마치 이 재료들로 이렇게 귀여운 걸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문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는 점원이 다르다. 점원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계산 업무를 보는 시간 외엔 문구점의 물건들을 활용해 각자의 작품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어떤 점원은 비즈 공예를 하고 있었고, 어떤 점원은 부활절을 맞아 가게에 장식해 둘 토끼를 만들고 있었다. 아까 뒷 쪽에서 본 빈 캡슐통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하얀색 모루로 토끼 귀를 만드는 중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재료가 가득한 공간에서 일한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일 것만 같다.
처음 직감했던 것처럼 나는 이곳의 단골이 되었다. 사고 싶은 재료가 생겼을 때는 그걸 핑계 삼아 들르기도 하고, 심심할 때도 괜히 한 번씩 들리게 되는 그런 곳이 되었다. 요즘 통 못 갔다 싶으면 한 번씩 주기적으로 들러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중고 가게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새로운 쓸모를 고민하게 되는 낯선 물건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이런 점들이 자꾸만 나를 문구점으로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