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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Feb 03. 2021

미술계의 비주류



 요즘 화가 나는 일이 무척이나 많다. 원래도 화가 없는 편은 아니었으나 들끓었다 내려오는 일들이 잦아졌다. 최근의 시작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올해의 작가상> 강간 인형을 가져다  작가로부터 촉발되었다. 인간성의 소외를 표현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대상화, 성애화의 욕망으로 만들어낸 강간 인형을 촬영하고  장면들을 잘라 전시한  작가의 작업을 보며 여전히 만연해 있는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느낄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노가 사그라들 때쯤  화를 부르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일을 옹호하는 또다른 이들의 언어를 마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전시를 보지 않았고, 예술계에서 이런 외설적인 소재를 가지고 중요한 주제를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 현재 여성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에 제대로  논리 구조를 갖추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는 헛소리를 주야장천 늘어놓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의 이런 이야기가 통용되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사고관을 스스로가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미술계에서 이루어진 지독한 여성 혐오의 역사가 여전히 그들에게 내재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16년부터 시작된 예술계 내 성폭력에 대한 발화가 시작된 이후로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이 판 안에서의 자성은 부족하고, 그런 상황에서 이미 권력을 가지고 기득권을 점한 남성들 사이에서 이상한 여성 혐오의 말들은 전혀 제대로 줄고 있지 않다. 눈치를 보면서 여전히 그 선을 넘나드는 언어와 행동은 가실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결국 또 와닿은 건, 여전히 미술계에서 여성은 바깥에 위치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미술계의 비주류가 여성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동네는 여전한 모양이다. 미술대학 한해 입학생의 남녀비율은 1:10 정도지만, 모 미술관에서 새로이 열리고 있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남녀비율은 10:1에 가깝고, 많은 여성 작가들이 하는 가치 있는 작업은 기회의 자리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박탈당하고 있다.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삶을 말하고, 여성이 처한 환경을 작업으로 표현하는 것 모두가 동시대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이것은 페미니즘이고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닌 작업이라고 명명 당하고만다.


그렇게 여전히 미술 안에서, 여성은 비주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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