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전의 기록

by 사주영웅


인간의 운명에 관한 동한시대 왕충의 말을 살펴보자.


“전에 의하면 명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명이며, 둘째는 隨수명이며 셋째는 漕조명이다. 정명은 본래 품수받아 저절로 길함을 받은 것을 말한다. 타고난 골상이 좋기 때문에 행실을 취해 복을 구하지 않아도 길함이 저절로 이르므로 정명이라 한다. 수명은 죽도록 힘써 행실을 닦음으로써 복에 이르거나 자신의 욕정을 쫓아 행하여 흉화가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명이라 한다. 조명은 선을 행하였는데도 나쁜 결과를 얻고 뜻밖에 우연히 화를 당하는데, 바라는 것이 아니지만 밖에서 흉화를 만나므로 조명이라 한다”




명리학에 대한 세간의 운명론적인 점술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궁색한 역사적 근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 위에 언급한 왕충의 언급도 그렇고 삼명통회에서 지적하고 있는 운명에 있어서의 적선의 영향을 고려해 봐도 그렇다. 명리학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늘 염두에 두게 하며 자유의지의 올바른 구현과 정도를 독려했다는 점에서 명리학은 서양의 그 어떤 윤리학도 제시하지 못했던 윤리의 근원을 말해주고 있다. 명리학의 도덕관은 니체가 부정하려고 했던 시대와 체계와 법률과 종교의 시녀처럼 기능하던 서양 윤리의 근원과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명을 경건하게 생각하고, 그 의미를 무겁고 진중하게 생각할 때, 윤리와 도덕과 온전한 인간관이 비로소 세워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점점 병들어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수많은 부작용과 문제점들을 근원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입추. 아직 날은 덥다. 내년 이맘때도 더울 것이다. 이것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은 순환하고 반복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 쳔년동안 이맘때는 더웠을 것이고, 또 앞으로 수천년동안 8월은 덥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이 8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삼복 더위에도 스타일을 위해 모피 코트를 입는 힙합 랩퍼들이 있다. 눈덮인 설원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젊은 열정의 사진을 한번쯤 본적 있지 않은가?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과 자유의지, 이 두 가지가 서로의 존재를 배제하는 관계라고 보는 것 같다. 인생이 정말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좋겠다. 삶은 복잡하다. 이건 교양수준이다. 누군가가 명리를 공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종종 하셨다. 서울에 가본 사람이랑 안가본 사람이 서울이야기를 하면 안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명리에 대해서 더 확고하고 단호하게 운명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명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작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명리에 대해 뭐라고 단정지어 말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가 명리를 공부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 뭔가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것이다.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그 운명이 우선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신봉자들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자유의지가 인도한 지금까지의 삶이 어떤 것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의 문제에 대해 과연 자유의지가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말이다. 자유의지를 믿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자기 의지대로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대개의 삶은 이런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투쟁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