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주소만 봐도 상대방에 대한 많은 정보를 추측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옛날엔 집에 백과사전이 있는지의 여부로 많은 것을 알수 있었다. 그 집 부모님이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나, 경제적인 능력, 전반적인 가정의 분위기등은 일단 백과사전, 혹은 세계문학전집 과 같은 전집류의 유무를 통해 어느정도 파악이 되었다고나 할까.
간혹 거실 책장에 백과사전 전권시리즈가 가지런하게 꽂혀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면, 아무거나 한권씩 빼서 펼쳐보던 기억이 난다. 동아대백과사전, 두산대백과사전, 계몽사 어린이 백과사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이라는 브리태니커는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 당시에 실제 갖고 있는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백과사전은 숙제할 때, 심심할 때, 공부할 때, 부모님에게 혼났을 때, 언제든 펼치면 그 자체로 해결책이 되는 묘한 기능이 있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옛날 백과사전은 지금의 인터넷 못지 않은 중독성과 흡인력이 있었고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다양한 컬러사진과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결국 책의 형태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백과사전은 전자와 빛의 속도로 무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히 인터넷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는 그나마 근근히 명백을 이어오던 고전적인 백과사전의 종말을 선언한다.
위키피디아는 하와이어로 빠르다는 뜻을 가진 위키wiki와 가르치다는 뜻의 pedia의 결합으로 생긴 말이다. 위키wiki라는 말은 하와이어의 뜻 외에, 불특정 다수가 협업을 통해 직접 내용과 정보를 수정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위키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문서를 작성하는 일종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 위키피디아는 지미 웨일스와 래리 생어에 의해서 설립되어 2001년 첫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지식과 정보를 보다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의의를 두고, 전세계의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지식들을 십시일반으로 축적한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한 신뢰도 부족하던 초창기, 위키피디아의 정보는 사실 학술적으로도 일상적으로도 큰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위키피디아는 과거 화려했던 그 어떤 백과사전 보다도 훨씬 더 많은 항목과 정보를 공급해주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아마도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백과사전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만들어졌던 모든 종류의 백과사전의 지식과 정보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다.
영어로 백과사전은 인사이클로피디아Encyclopedia이다. -pedia는 어린아이, 그리고 어린아이는 교육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단어는 교육과 관련한 단어에도 나타난다. 교수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페다고지pedagogy에도 포함되어 있는 어원이다. 페다고지는 아이peda-를 이끌다ag-는 뜻에서 교육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paideia는 기독교 역사 초기에 라틴어로 humanitas라고 불리기도 했다. humanitas는 현재 인문학 전반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결국, 그리스 어원에서 밝혀진 것으로 보자면, 일반적 교육의 근본은 인문학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린이를 진료하는 소아과는 pediatrics 라고 한다. 어린이pedi-라는 말 뒤에 치료healing를 의미하는 iatrics가 결합된 말이다. 정형외과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orthopedics는 아이들pedi-의 신체를 바르게, 곧게ortho- 치료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Ortho-는 정통, 정설등을 의미하는 orthodox라는 단어에서 보이듯이, 기본적으로 바르다, 참, 진실이라는 뜻이 있다.
인사이클로피디아에서 이제 겨우 pedia에 해당하는 부분만 살펴보았다. 그러면, 앞의 encyclo-는 어떤 의미일까? en-은 전치사 in처럼 —안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cyclo-는 자전거를 의미하는 bicycle, 순환과 재활용을 의미하는 recycle에서처럼 둥근 원 혹은 바퀴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encyclo-는 원 속으로, 바퀴 안으로라는 의미가 된다. 그럼 전체 단어인 encyclopedia는 아이를 바퀴안에 넣어서 교육한다는 뜻이 되는걸까?
어원을 찾다 보니, 다소 뜬금없는 해석이 되었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렇다. 중세에 encyclopedia는 일종의 전반적인 교육, 일반적인 교육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참고문헌에 따르면 단어에 포함된 원cyclo-이라는 말은 중세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학문인 예술과 과학등을 의미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문자 그대로 원의 의미로 와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다 보니, 원속에 아이를 넣어 교육한다는 다소 황당하지만 매우 시적인 의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애초의 의미를 풀어본다면 아이에게 가르치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교육이라는 어원의 뜻이 어떻게 백과사전이라는 말로 번역되었을까? 백과사전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교육이라는 말도 어린이라는 말도, 원이라는 말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19세기 서양의 근대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던 니시 아마네의 기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니시 아마네는 19세기 일본의 계몽사상가로 유학은 물론 양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일본의 지식인이다. 그는 논리학, 심리학, 미학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저술과 번역활동을 했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신지식의 개념과 용어들을 번역했는데, 당시 그가 선택한 많은 번역용어는 현재까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다.
아마네는 처음 encyclopedia를 번역했을 때, <백학연환白學連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마네의 번역에 대한 설명은 참고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영국의 Encyclopedia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의 엔큐클리오스 파이데이아 Εγκυκλιοζ παίδεια 에서 왔으며, 그 말 그대로의 의미는 동자를 바퀴안에 넣어 교육한다는 뜻이다. 고로 지금 이를 번역하여 백학연환白學連環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엔큐클리오스는 둥글다circular라는 뜻 외에도 매년의, 통상의, 일상의, 일반적인이라는 뜻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둥근 원은 다양한 학문이 일종의 둥근 고리를 이루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백이라는 단어는 숫자 100이 아니라, 많은, 무수한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백학연환”이라는 말은 다양한 학문이 원의 모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하이퍼링크로 무장된 지상 최고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현재 모습에 훨씬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백학연환』은 단지 encyclopedia라는 영어단어를 번역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 일 뿐만 아니라, 니시 아마네가 일본에서 받아들인 서구의 신지식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전반적인 과정과, 새로운 지식에 합당한 번역어를 구축하는데 부여한 사유와 성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떤 새로운 지식체계가 도래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분류하는가는 특정한 시대의 세계관, 학술관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이후의 학문의 발전과 전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점에서 아마네는 근대적인 지식을 일본의 언어로 체계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의 전체적인 구성을 『백학연환』이라는 제목하에 세부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아마네가 “고리처럼 연결된 갖가지 학문을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뜻으로 번역한 “백학연환”은 이후로 여러 문헌학적인 성찰과 고증을 통해 현재의 번역어 백과사전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처음 encyclopedia의 어원적 의미에서 출발하여 백과사전이라는 단어에 이르기까지의 길고 지난한 역사를 살펴보면, 낱말 하나하나에 축적된 문화의 의미의 지층이 새삼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