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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y 02. 2024

마농 레스코, 춘희, 라 트라비아타,

18세기 프랑스의 소설 『마농 레스코』는 마농이라는 미모의 여성과 슈발리에 데 그류라는 남자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마농은 마치 팜므 파탈처럼 천천히 슈발리에를 몰락의 길로 내몰고 만다. 탁월한 미모와 세속적인 탐욕 때문에 마농은 항상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는데, 마농을 사랑한 슈발리에 역시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매춘부는 아니었지만, 마농은 언제라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슈발리에를 떠나곤 한다. 하지만 슈발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농을 사랑한다.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으로 두 사람은 사막으로 도망가지만, 결국 마농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고 만다. 작가였던 아베 프레보Antoine François Prévost는 신부이기도 했던 만큼, 마농의 비극적인 결말은 어느정도 교훈적인 메시지로 읽혀진다. 

『마농 레스코』는 19세기 프랑스 소설 『춘희』에 다시 등장한다. 『춘희』는 삼총사를 썼던 알렉산더 뒤마의 아들인 뒤마 피스가 쓴 소설이다. 소설속 화자는 경매에서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소장품이었었던 책 『마농 레스코』를 구매한다. 그런데, 아르망 뒤발이라는 사람이 그 책을 구매하고 싶다고 화자를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파리의 유명한 코르티잔cortesan으로, 일종의 정부, 혹은 고급매춘부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아르망 뒤발은 마르그리트에게 정부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청년의 아버지는 마르그리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마르그리트에게 아르망의 미래를 위해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요청한다.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을 사랑하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별다른 설명없이 그를 떠난다. 다시 고급매춘부의 삶으로 돌아간 마르그리트에게 어느날 아르망 뒤발이 찾아오는데, 그는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 마르그리트에게 실망하게 된다. 아르망은 결국 그녀를 떠난다. 혼자 남게된 마르그리트는 결국 폐병으로 죽게 되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의 사랑이 순수했었음을 깨닫게 된 아르망 뒤발은 결국 그녀의 유품이라도 되찾고자 『마농 레스코』를 구매하려고 했던 것이다. 

『춘희』의 원래 제목은 La Dame aux camélias, The Lady of the Camellias, 동백꽃 여인이었는데, 일본어로 椿姬(つばきひめ)로 번역되면서 한국에서도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춘희』가 되었다. 


쥬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춘희』의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3막 오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목에 사용된 La Traviata는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뜻이다. Tra-는 가로지른다는 뜻으로 trans-와 비슷하다. via-는 길을 의미한다. 길을 가로질러 여기저기 다니는 느낌이다. 


매춘은 흔히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다. 매춘은 영어로 prostitutioin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성에 관한 것도, 여성에 대한 어떠한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단지 앞을 의미하는 pro-와  서 있다는 뜻의 stitute 로 구성되었다. 홍등가의 여성들이 길거리 앞에 서서 호객하는 모습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단어가 처음 생겨나던 시절의 풍경이 오늘날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매춘부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는 다양하다. Prostitute가 일반적이지만, hooker라는 단어도 있다. hook는 낚시 바늘 같은 갈고리를 의미한다. 마치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상대를 낚아챈다는 의미로 봐서 다소 섬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허슬러hustler라는 말은 사기꾼이라는 뜻에 더해서 매춘부라는 뜻도 갖고 있는 말이다. prostitution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지금은 sex workers라는 단어로 순화(?)되어 사용된다고 한다. 비록 prostitution단어 자체에는 성과 관련된 요소가 없지만 오랜 세월 성과 관련된 직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까닭에 단어에도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고착된 탓이라고 생각된다. 


Prostitution에 있는 stitute는 서 있다는 뜻과 관련된 많은 단어 속에서 발견된다. 제도라는 뜻의 institution은 사회의 기틀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서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을 의미하는 Constitution은 어떨까? 역시 한 사회의 법치주의적 질서를 확립하고 세우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세우고, 일으킨다는 뜻과 관계가 깊다고 하겠다. constitution은 구성이라는 뜻도 있는데, 헌법이라는 의미로 사용할때에는 항상 첫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아래에 서있다는 뜻의 substitute는 대체한다는 뜻이 있다. 


일어서다, 세우다는 뜻의 stand에서 st-의 부분이 핵심적이다. 그래서 옆에 서서 도움을 주는 것을 assist라고 한다. 옆에a- 서st- 있다는 뜻이다. 조수는 assistant라고 한다. 서서 버티고, 저항하는 것은 resist라고 한다. 뒤로re- 선다sist 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와 끝까지 저항하며 싸우던 시민군들을 레지스탕스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resistance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서 있는 것은 가혹한 환경이나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관통해서per- 서있는sist-것은 견딘다는 뜻이 된다. 명사형으로는 persistence라고 하며 고집이나, 집요함, 끝까지 견딤이라는 뜻이라고 할수 있다. 


쉰다라는 뜻의 rest는 어떨까? 워낙 짧은 단어라서 분석할게 없는 것 같지만, 역시 뒤를 의미하는 접두사 re-와 서다라는 뜻의st-가 결합된 말이다. 뒤에 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쉰다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뒤에 선다는건, 마치 군대에서 열외된다는 뜻과 같다. 쉬라는 말이다. rest에는 나머지라는 뜻도 있다. 어떤 무리에서 일부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남아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은 제외하고 뒤에 남아 서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앞에 서 있다는 의미의 구성을 가졌지만, prostitute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있다. 전립선을 의미하는 prostate다. 역시 앞이라는 의미의 pro- 그리고 서다는 뜻의 sta-가 결합된 단어다. 전립선의 경우, 영어단어의 어원이 갖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번역어로 채택했다.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별칭에 맞게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매춘은 성행했다고 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아프로디테의 신전은 당시로서는 합법적인 매춘업소였다. 아프로디테의 신전에는 '헤타이라'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프로디테에게 봉헌하기 위해 돈을 받고 몸을 팔았다. 복장이 단정했고, 말과 행동은 매우 고상했기 때문에 길거리의 매춘여성들과 차별되되는 존재였다. 이러한 헤타이라와 달리 하층 계급의 매춘여성들은 포르노이(pornoi)라고 불렸다. 그리고 포르노이와 그들을 찾는 손님들의 생활과 습관, 행동을 기록한 것이 포르노그래피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이후 포르노그래피는 성관계의 행동과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현대의 포르노그래피는 가상현실이미지로도 진화중이다. 


현대사회에서 포르노라는 단어는 일종의 개념적인 용어로도 사용된다. 음식포르노food porn, 가난포르노poverty porn, pornography of poverty등 대부분 부정적인 맥락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수 있는 외적 형식이 결핍된 상태를 그대로 노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포르노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포르노라는 단어가 공적언론매체에서 개념적인 레토릭으로 사용되는 것은 꽤나 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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