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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r 29. 2024

중용 에듀케이션


에듀케이션education에서 잘라낸 에듀edu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에서 교육이라는 말로 통한다. 에듀를 붙이면 모든 것에 교육적인 의미가 들어간다. 에듀윌부터, 에듀테크, 에듀관광, 에듀마켓, 에듀소프트웨어 등등.


에듀케이션education은 educare-라는 말에서 왔는데, 기르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한국어의 교육敎育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영어의 어원으로 따져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는 바깥을 의미하고, duc-는 이끌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원적으로 분석하면 밖으로 이끌다, 밖으로 이끌어낸다는 의미다. 재능을 이끌어 낸다고 해석하면 educate의 의미를 아주 이상적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끌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duc-가 포함된 단어는 매우 많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라는 단어 conductor는 지휘하다는 뜻의 동사 conduct의 파생어다. con은 모두,함께 라는 뜻으로 conduct는 모두를 이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conductor는 버스나 기차의 차장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이끌고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자신을 소개하는 말로 사용하는 introduce는 어떤가. intro-안으로 duce-이끌고 간다는 뜻인데, 단순히 인사를 위한 소개 뿐만 아니라, 어떤 문물이나 누군가를 어디로 데리고 간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한국에 랩을 소개하거나, 서양에 동양사상을 소개한다면 introduce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 언어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구체와 추상의 구분이다. 보통 위쪽방향, 하늘과 관련된 것은 추상과 관련되고, 땅이나 아래쪽 방향과 관련한 것은 구체적인 것으로 연결된다. 위쪽이라는 방향성을 갖는 형이상학은 관념적인것이고, 아래를 의미하는 형이하학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연역한다는 뜻의 deduce는 아래로de- 끌어온다duce는 말이다. 연역한다는 뜻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원리를 이끌어내는 추론의 원칙이다.


유혹은 극복하기 어렵다. 만약 누군가가 정도의 길을 가고 있는데 유혹에 현혹되면 분명 정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유혹한다는 뜻의 seduce는 분리되어 떨어지게 한다, 멀리 이끌어간다는 뜻을 갖고 있다. se-는 분리와 이탈을 의미한다. duce는 이끌다는 뜻이다. 이끌어서 분리해 낸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se-가 분리와 이탈을 의미하는 것은 따로따로 라는 의미를 가진 separate에서도 사용된다. seduce는 주로 성적인 유혹을 의미하지만 과거에는 주종관계에서 신하나 부하들이 왕을 배신하도록 이끄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문명은 물을 관리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 치수는 곧 정치이기도 했다. 수로는 aqueduct라고 한다. 앞 부분의 aque는 물을 의미하는 aqua에서 왔고, duct는 이끌다는 뜻이다. 물을 이끈다는 말이다. 아쿠아맨Aquaman이나, 수족관을 의미하는 아쿠아리움aquarium덕분에 아쿠아aqua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편이다.


에듀케이션이라는 말은 이젠 교육이라는 단어와 함께 널리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어원적으로 에듀케이션과 교육은, 마치 동서양의 세계관처럼 서로 상이한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 에듀케이션이 뭔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행위와 연관된 교육을 지향한다면, 교육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가르치는 행위에만 집중한 나머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지시하고 암기시키는 교육은 한국식 교육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여기에는 영어의 educate에서처럼 극적인 의미를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매우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교’의 의미는 동양의 전통적 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의 경전으로 여겨지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으로 구성된 사서삼경은 유교 교육의 교과서 같은 고전이다. 특히 공자의 손자였던 자사가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는 『중용』은 사서중 맨 나중에 읽는 책으로 유교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리고 『중용』은 바로 이 ‘교敎’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중용』中庸의 시작은 이렇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천이 명하는 것, 그것을 일컬어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 그것을 일컬어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 그것을 일컬어 교라고 한다”(『중용한글역주』)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어에서 사용하는 ‘교’라는 단어는 본성, 천성과 같이 인간의 존재론적 철학의 핵심을 구성하는 ‘성性’의 개념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을 이해하고, 도道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도라는 개념은 동양사상의 핵심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가르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교’의 단어로 수렴되는 『중용』의 첫 구절에는 동양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천天, 명命, 도道, 교敎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동양의 도는 인간의 언어로 구속될 수 없는 우주론적인 개념이다. 언어를 초월하여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개념으로서 도라는 말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 도에 이르는 길을 닦는 행위가 바로 교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교’라는 행위, 즉 동양에서 가르친다는 말이 얼마나 무겁고 진지한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이나 단편적인 견해로 지적인 능력을 갖춘것처럼 보이게 하는 얄팍한 암기식 방법론으로 도달할 수 없다.


『중용』의 첫 문장을 얼마나 무겁게 이해하느냐의 여부가 ‘교’의 의미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직결된다. ‘교’라는 말의 의미를 통해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우리 동양의 고전속에서 충실히 찾아 성찰한다면 분명 한층 더 성숙한 교육적 환경과 교육의 실천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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