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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r 28. 2024

셰익스피어의 창, 롱기누스의 창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 보기도 전에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더 먼저 듣고 자란것 같다. 장학퀴즈같은 퀴즈 프로그램에서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작가는 누구인가?” 와 같은 문제들이 꽤 유행하곤 했기 때문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칼이 뿜어내는 무력은 칼날이 닿는 사람들만 굴복시킬 수 있겠지만, 펜은 글자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검투사와 같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이 속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름을 타고난 작가다.

동양의 사정도 비슷하지만 영어권의 많은 성(family names)은 직업으로부터 유래한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창을 던진다는 뜻이다. shake는 악수handshake를 할 때처럼, 흔들다는 뜻이 있다. 뒤에 뭘 흔드는가에 따라서 던진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뒤에 창speare가 왔다. 창을 흔드는 것, 곧 창을 던진다는 말이다. 아마도 선조중에 창을 잘 던지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정말 아주 날카롭고도 정확한 창을 후세에 남긴 셈이다. 그 날카로운 창은 섬세한 펜이었다.  


셰익스피어는 39편의 희곡작품과 150편이 넘는 소네트를 남겼다. 작품 하나하나가 드라마의 살아있는 교본처럼 완벽하고 재미있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작가로 흔히 돈키호테의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Cervantes가 언급된다. 돈키호테라는 작품 하나로 셰익스피어의 창에 맞선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용 동화처럼 각색되어 소개되는 바람에 아이들 문학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돈키호테』가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예전에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같은날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얼마나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인가? 하지만, 정보가 빨라지고 정확해진 지금,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두 사람은 하루 차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보화 시대는 더 정확해진것인지, 과하게 정확해진것인지는 모르겠다. 같은 날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을때가 더 좋았다. 


영어권에서 직업의 명칭을 성으로 쓰는 경우, 대체로 한국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아처Archer라는 이름은 화살을 쏘는 사람, 궁수bowman이라는 뜻에서 왔다. 양궁은 archery라고 한다. 아쳐가 화살을 쏘는 궁수라는 뜻이었다면, 플레쳐Fletcher는 화살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이다. 동양에서 활쏘기는 예로부터 선비들의 스포츠였다. 활쏘기에서 과녁을 맞추는가의 여부는 활에 있지 않고 활을 쏘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신 이외의 것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살피고 성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활이나 활을 쏘는 법이 아니라, 바로 쏘는 사람이다. 


캐스퍼Casper는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더 이전에는 에니메이션의 유령 주인공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캐스퍼Casper는 보물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도 있겠다. 성경에 등장하는 동방박사 3인 중 한명이 바로 캐스퍼Casper였다. 다른 두 사람은 발타자르Balthasar와 멜키오르Melchior 였다. 이 세 사람은 아기예수에게 소중한 보물을 들고 찾아간다. 


카펜터스Carpenters는 아마도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천사와 같은 목소리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목소리의 주인공 카렌 카펜터Carpenter. 오빠였던 리차드 카펜터와 함께 카펜터스The Carpenters라는 밴드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주옥같은 노래들을 많이 남겼다. 카펜터는 목수라는 뜻이다. 목공일은 carpentry라고 한다. 호러 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John Carpenter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호러 영화는 아마도 “그것”(The Thing)일 것이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영어 이름 스펠링을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살펴보면서 확인하게 되었다. Thatcher는 지붕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한국의 초가집은 영어로 Thatched House라고 한다.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Thatch는 짚을 엮다는 뜻이 있다. 지붕에 올리는 짚을 엮는 것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했나 보다. 


1937년부터 1940년 사이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네빌 체임벌린은 어쩌면 이름대로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다. 체임벌린chamberlain은 단어 안에 방을 의미하는 chamber가 있어서 사실 어원적 의미를 유추하는게 어렵지 않다. 원래는 방을 정돈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이후, 왕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의 개인적인 공간을 관리하는 의미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보물같이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이렇게 물건이나 장소를 관리하는 사람의 의미로는 steward라는 단어도 함께 쓰인다. 흔히 스튜어디스stewardess라는 말은 이 스튜어드에 여성형 접미사가 결합되어 생겨난 말이다. 지금은 PC룰 때문에 젠더중립적인 표현인 항공승무원flight attendant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아임 유어 맨I’m your man. 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은 밥 딜런의 노래 만큼이나 문학성 높은 노랫말로 잘 알려져 있다. 중후한 외모와 허스키한 목소리는 종종 신부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실제 코헨cohen은 헤브라이어의 코헨Kohen에서 왔고 신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동차에 펑크가 나면 한번쯤 트렁크에서 이것을 뒤져 봤을 것이다.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기구 잭Jack이다. 물론, 재크와 콩나무를 비롯, 애꾸눈 잭등 한국에도 유명한 잭이 다양하다. 잭이라는 말은 건강하다, 튼튼하다 힘이 넘친다는 뜻이 있다.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기구의 이름으로 정말 딱 알맞지 않은가? 중세 영어에서는 “하느님이 은혜로우시다”는 뜻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영어사전으로 유명한 웹스터Webster 역시 기막히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미국에서 사전이라는 말은 곧 웹스터를 의미할 정도로, 노아 웹스터가 편찬한 사전은 미국사회의 교육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웹스터는 실을 잣는 사람weaver이라는 뜻이다. 웹web은 거미줄을 말하는데, 말 그대로 거미줄처럼 실을 짜낸다는 뜻이다. 은유적으로 그가 만든 사전은 정말 수많은 단어들을 모두 잡은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창으로 시작해서 여러 이름들을 살펴봤다. 서양의 역사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창이 있다. 바로 롱기누스의 창Lance of Longinus이다. 성스러운 창The Holy Lance라고도 하고, 운명의 창The Spear of Destiny라고도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로마의 한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사용한 창이다. 이 병사는 이후 기독교로 개종되어 나중에는 성인으로까지 추앙되었다. 


중세의 신비극에서 성서의 이 장면을 다룰 때, 병사는 롱기누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롱기누스라는 이름은 롱long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창이 길기 때문이다. 혹은 그리스어 롱게Longe 자체에 창lance라는 뜻이 있다고도 한다. 그렇게 되면, 롱기누스의 창이라는 말은 긴 창의 창 이라는 약간 잉여적인 표현이 된다.  

안노 히데아키의 에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도 롱기누스의 창이 등장한다.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른 이름들도 어느정도  고증되고 검토된 후에 사용된것처럼 에반게리온이 사용하는 창의 이름을 롱기누스의 창이라고 붙인 것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제목이 에반게리온evangelion, 즉 복음good news이라는 뜻으로 이미 성서적인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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