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쉬와 대결했던 엘 고어는 선거에서 패배한 후 환경운동가로 변모하게 된다. 젊은시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기후재앙과 지구온난화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자료와 조사를 바탕으로, 그는 2006년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어떻게 직접적으로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다큐의 내용대로라면 지구는 금방이라도 종말에 이를것처럼 보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대표적인 소설 『개미』에서 이렇게 말한적 있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도 행성의 주인을 개미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그도 그럴것이 단순한 개체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지구인1명당 100만 마리의 개미가 존재한다고 하니, 외계인의 관점에서 행성의 주도적인 개체는 개미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화산폭발의 충격은 원자폭탄 몇 개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설명될 때가 많다. 원자폭탄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자연적인 힘, 지진이나 화산폭발, 산불, 쓰나미 등의 위력과 비교했을땐 여전히 인간이 미칠수 있는 영향력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중요성, 그리고 그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어쩌면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는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쓰레기에 압도당한 자연은 종종 안타까울 정도로 위태롭게 보인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비롯 환경오염,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등 인간문명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주장은 파울 크뤼천에 의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명칭으로 공식적으로 제시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과학의 영향력은 이제 자연 그 자체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만큼 치명적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학술적 주장이다. 먼 훗날 21세기에 남겨진 광범위한 지질학적 증거는 모두 그 사태의 원인으로 인간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인류세는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세라는 말은 영어로Anthropocene이다. 다른 지질학적 명칭과 비슷하게 운을 맞워 만들어진 단어다. 지구가 태어난 45억년 전부터의 지질학적 명칭은 스펠링을 제대로 읽기조차 낯설고 어렵다. 그나마 익숙한 단어라곤 쥬라기 공원을 통해 알려진 쥬라기Jurassic period 정도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우주달력을 통해서 인류의 존재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시간적으로 환산해 보여준적 있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으로 생각하면 현재 인류가 출현한 것은 정말 거의 아주 미미한 시간에 불과하다.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138억년을 1년으로 환산하면, 지구에서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12월 20일 정도에 해당한다. 널리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는 가장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11시 48분에 등장한다. 그리고, 현생인류가 탄생하고 문명을 일구고 현대사회가 번성하는 시기는 12월 31일 하고도 밤 11시 59분 58초에서 59초 사이에 불과하다.
1년의 시간중 1초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그 찰나같은 순간속에 인류가 존재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에서 문자를 발명하고 전기를 발명하고 인터넷과 인공위성 우주선과 A.I.의 등장 모두가 이 1초안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1초남짓 동안 존재하는 어떤 것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치명적일 수 있을까?
지질학적 구분에 따르면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지질학적 명칭은 홀로세Holocene다. 프랑스어로 ‘완전히wholly 새롭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략 2만년 전부터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해서 1만 2천년전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라고 할 수 있는 홀로세가 시작된다. 이 기간은 비교적 기후변동이 적었고 구석기에서 비로소 신석기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농업이 시작되었고, 비옥한 강가의 퇴적층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
홀로세의 뒤를 이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anthropo와 cene으로 구성된 단어다. 접미사로 붙어있는 -cene은 ‘최근’, ‘새롭다’는 뜻이 있다. 최근의 것이 새로운 것이다. 당연히 최근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recent에 그 형태가 고스란히 보인다.
anthropo-라는 부분은 인간을 의미한다. 인류학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는 anthropology다. 박애주의를 의미하는 philanthropy에도 포함되어 있다. 박애주의자는 philanthropist 라고 한다. phil-은 사랑한다는 뜻이다. 철학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philosophy는 sophy를 사랑phil한다는 뜻이다. 소피sophy는 지혜를 의미하고, 그리스에서 궤변론자들을 소피스트sophist 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피sophy는 사람의 이름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80년대 청춘스타였던 소피 마르소, 고전영화배우 소피아 로렌 등이 있었던 것처럼 소피라는 이름은 비교적 친숙하게 들린다. 재미있는 것은 지혜와 슬기를 의미하는 sophy가 서양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사용된것처럼, 한국에서도 지혜나, 슬기는 곧장 여성의 이름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지혜로움은 여성적인 것으로 환기되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지혜로운 어머니 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운데, 지혜로운 아버지는 별로 전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에 배분된 인간 본래의 성정이 어느정도 동서양의 직관에 공통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메릴 스트립과 케빈 클라인이 주연했던 1982년 영화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은 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겪었던 여주인공 소피의 이야기다. 영화는 소피와 그녀의 남자친구 네이선, 그리고 영화의 나레이터인 스팅고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다. 영화는 비극적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피는 결국 네이선과 함께 자살한다. 소피의 트라우마는 그녀가 과거에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 때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중, 소피는 아우슈비츠에 자신의 두 아이와 함께 끌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일군 장교 앞에서 자신의 두 아이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아들과 딸. 두 아이를 놓고 소피는 한 아이를 살리거나, 혹은 한 아이를 포기해야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결국 소피는 자신의 아들과 딸 사이에서 가스실로 보낼 아이를 선택하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을 한 개인에게 압도적으로 강요하고, 또 실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과 역사에 대한 가슴아픈 비망록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매 순간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선택이 결국은 리얼리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인류세라는 명칭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마저 압도하며 지구에 돌이킬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하는 인류세와 동시에 장구한 지구에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하기엔 인간은 너무나 순간에 불과할 정도의 존재밖에 안된다는 인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체성을 인류세로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