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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y 10. 2024

코코넛을 뚫는 황금브로우치

코코넛coconut 하면 2000년 제작된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생각난다. 주인공 척은 페덱스 회사의 임원이다. 늘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니던 척은 어느날 비행시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영화는 이 방면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로빈슨 크루소』를 어느정도 느슨하게 차용했기 때문에 표류한 척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허술하게 잠자리를 만들고,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표식을 주기적으로 기록하고,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낸다. 해안으로 밀려온 비행기 수하물에서 쓸만한 물건을 얻을 수있었던 그는 점점 무인도에 적응하며 살아나간다. 영화 초반,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던 척은 섬에 코코넛 열매가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일단 코코넛 열매를 따 모았지만, 껍질이 두꺼운 열매를 까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바위에 던지고, 찍고, 돌로 쳐봐도 코코넛 열매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코코넛을 내려치던 돌덩이가 우연히 구석기시대에나 썼을 법한 돌도끼 모양으로 깨지는 바람에 척은 그것으로 간신히 코코넛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코코넛이 그렇게나 두껍고 딱딱할 줄이야.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어로 죽는 사람보다 코코넛 열매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높이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코코넛은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코코넛이라는 단어의 앞쪽에 있는 코코coco는 찡그린 사람의 표정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왔다. 코코넛의 아랫쪽에는 세개의 구멍이 파여있다. 하지만 바로 놓고 보면 꼭 스마일맨을 닮은 얼굴로 보인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 코코넛을 무인가게에 두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행동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얼굴과 닮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얼굴의 형상이지만 코코넛의 시선에 노출된 사람은 은근히 자신의 양심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사람의 머리통을 닮은 채소도 있다. 양배추다. 양배추는 영어로 cabbage라고 하는데, 어원은 역시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왔다. 머리에 쓰는 차양이 있는 모자를 cap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머리에 해당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법정 최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과 같은 형벌은 capital punishment라고 했다. 당연히 머리를 신체에서 분리하는 형벌이다. 머리는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팀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captain은 선장, 주장등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capital은 자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머리와 자본은 어떻게 만났을까? 


옛날 가장 큰 재산에 해당하는 것들은 보통 집과 땅, 그리고 가축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축을 의미하는 cattle 역시도 capital과 어원이 같다. 가축들은 머리의 수를 세서 양을 가늠한다. 한국에서도 돼지나 소를 말할 때, 10두, 20두 라고 하는 것과 같다. 가축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서 그랬을까? 서양이나 동양 모두 동물의 머리를 양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긴다는 사실이 언어에 반영된 셈이다. 


맥도널드에서 종종 시켜먹을 수 있는 코울슬로cole-slaw는 양배추와 옥수수를 소스에 버무린 일종의 샐러드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에 양배추cole가 보인다. slaw는 샐러드를 의미한다. 지금은 다양한 샐러드 소스sauce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저 소금salt정도만 곁들여서 먹었다고 한다. 샐러드는 그래서 소금salt와 관계 있는 말이다. ‘소금에 절였다’는 뜻의 라틴어 salata에서 유래한다. ‘소금에 절였다’는 뜻을 가진 또 다른 라틴어에는 살사salsa가 있다. 흔히 먹을 수 있는 살사소스의 그 살사다. 소금의 의미는 퇴색하고 소스의 의미로만 통하는데, 사실 소스라는 영어단어 sauce역시 소금을 의미하는 salt에서 유래한 말이다. 


로마시대에 소금은 매우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군인들은 급료와 별도로 소금을 살수 있는 돈을 따로 지급받았다고 한다. 소금은 음식을 저장하는데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금을 사기위해 받았던 돈salt-money이라는 의미에서 salary라는 말이 생겨났다. 샐러리salary는 다 알다시피 월급, 급여, 연봉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소시지sausage는 소금에 절인 고기salted meat라는 뜻의 라틴어 salsicium에서 파생되었다. 역시 소금이라는 단어 salt가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소금salt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월급salary, 소스sauce,살사salsa, 샐러드salad, 소시지sausage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창출되었다. 


코울슬로cole-slaw에서 앞의 cole은 양배추를 의미하는 북유럽 단어kal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의 의미는 줄기나 식물을 의미한다. 컬리플라워cauliflower는 여기서 파생되어 생긴 이름이다. 컬리플라워가 양배추랑 닮은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컬리플라워는 브로콜리와 더 비슷하지 않은가? 브로콜리broccoli라는 단어는 brocco에서 왔다. Brocco는 양배추의 뻗어나간 줄기, 양배추의 싹을 의미하는데, 동시에 가지shoot 혹은 뾰족한 작은 못small nail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는 뾰족한 침이나 날카로운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악세사리 중 하나인 브로우치brooch라는 단어에도 들어 있다. 보석이나 아름다운 모양으로 장식된 브로우치는 단순한 악세사리 이상의 예술적인 의미가 있을 때도 있다. 

악세사리를 의미하는 brooch는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단어 broach와 헷갈리기 쉽다. broach는 주로 동사로 사용되는데, 어떤 이야기의 화젯거리를 꺼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야기를 꺼낸다는 의미는 과거 술통의 뚜껑을 열어서 내용물을 꺼낸다는 의미에서 유래하는데, 뚜껑을 열 때 표족한 금속, 곧 브로우치broach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서 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장식용 옷핀을 의미하는 브로치 brooch는 이야기거리를 꺼낸다는 의미의 broach와 broche라는 어원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broche는 뾰족한 도구를 의미한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의 비극 『오이디스프 왕』에서 주인공 오이디프스는 신탁의 예언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 사악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절망한 그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처럼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황금 브로우치brooch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된다. 


그 브로우치는 처음 신탁의 예언을 들었던 라이우스Laius와 이오카스테Jocasta가 자신의 아들인 오디디프스를 유기하기 위해 오이디프스의 발 뒷꿈치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된 바로 그 브로우치이기도 했다. 그 상처로 인해 발이 부어 올랐고, 그것은 곧 그의 이름, 오이디프스(Oedipus, 부어 오른oedi 발pus이라는 뜻)이 된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또 널리 알려진 브로우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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