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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y 13. 2024

아톰에게 남겨진 지상최대의 희망

코로나를 거치면서 판데믹pandemic이라는 단어는 아주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국지적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는 엔데믹endemic과 달리 판데믹은 모든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다. 판pan은 전부, 모두를 의미하는 접두어로 많이 사용된다. 


demic은 사람을 의미하는 demos-에서 파생되었다. demos-가 사용된 가장 널리 알려진 단어는 아마도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뒤의 –cracy는 규율과 권력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치체제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앞부분의 단어만 바꾸면 다양한 정치체제를 표현할 수 있다. 


관료와 행정을 의미하는 bureau를 붙이면 관료정치bureaucracy가 된다. Bureau는 원래 서랍이 있는 책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종종 신문에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꽤 근거있는 표현이다. 귀족을 의미하는 aristocrat과 결합하면 귀족정치aristocracy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금권정치에 해당하는 plutocracy인데, 플루토pluto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 지하의 신이다. 아마도 플루토는 땅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땅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결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 하데스Hades에 해당된다. 


땅은 예로부터 돈과 재산의 근본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돈을 함께 묻어주기도 한다. 물론 플루토가 돈을 의미하게 된 것은 플루토의 이름에 흘러 넘친다는plu 의미 때문이다. 금과 다이아몬드 보석과 기름 물은 물론이고 인간사회에서 값나가는 모든 것들은 땅속에 있지 않은가? 땅속에는 온갖 값진 것들이 넘치도록 묻혀있다. 강물이 흐르는 것을 flow라고 하는데, fl-은 pluto의 plu-와 같은 어원이다. 지하의 신이면서 흘러넘친다는 뜻을 갖게 된 Pluto는 이렇게 돈을 의미하게 되었다. 


플루토는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 이름으로도 사용된 적 있다. 한국어로는 명왕성冥王星이라고 불렸다. 이름의 명자는 어두울 명冥자로, 보통 저승의 세계를 의미할 때 사용된다. 플푸토의 그리스식 이름 하데스가 죽음의 신이라는데서 착안한 번역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 만화의 신으로 여겨지는 데츠카 오사무는 아톰의 한 에피소드에서 플루토라는 이름의 로봇을 등장시켰다. 플루토는 전 세계의 다른 뛰어난 로봇을 파괴하는 일종의 파괴의 신처름 등장한다. 이름을 플루토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몬스터』라는 만화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팬을 갖고 있는 일본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는 플루토가 등장하는 아톰의 에피소드, “지상최대의 로봇” 편을 따로 리메이크해서 『플루토』라는 제목으로 2003년 발표한다. 그리고 2023년 넷플릭스에서 그것을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 


한참 오래전에 그려졌던 원작에 충실한 내용이었음에도, 『플루토』에는 현대 인공지능과 관련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주제가 깊이있게 녹아 있었다. 원작이 그려졌던 1980년, 우라사와 나오키가 리메이크했던 2003년, 그리고 넷플리스 에니메이션이 나온 2023년. 시대를 관통하며 인공지능과 관련된 윤리적 고뇌를 포섭하는 플루토는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데츠카 오사무의 고민이 이미 현대적인 수준을 능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현대영어에서 통화는 currency 라고 하고, 암호화폐는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의미가 있는 crypto와 결합되어 crypto-currency라고한다. 화폐나 통화를 의미하는 currency에도 역시 흐른다flow는 의미가 있다. current는 물의 흐름, 급류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Pluto와 currency는 모두 돈을 의미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모두 강의 흐름, 물결, 넘친과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판데믹의 pan-이 사용된 두 번째로 유명한 단어는 아마도 판도라Pandora가 아닐까?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판도라의 상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판도라는 모든 것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판도라의 이름에 보이는 do는 뭔가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기증한다는 뜻의 donate이나, 약물을 복용할때의 용량을 의미하는 dose에도 역시 do-가 포함되어 있다. 부여하다, 제공하다는 뜻의 endow에도 보인다. 남녀가 결혼할 때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은 dowry라고 한다. 


사람이름인 Theodore는 신이Theo- 준dore것, 곧, 신의 선물을 의미한다. theo-는 신학theology에서 볼수 있듯이 신을 의미한다. 신의 선물을 의미하는 여성의 이름은 Dorothea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이름을 뒤집어 놓은 형태로 보인다. 영어로는 Dorothy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일 유명한 도로시는 아마도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도로시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나서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이 다 튀어나왔는데, 마지막까지 상자안에 남아 있던것이 희망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희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는 그 희망을 눈이 가려진 소녀의 모습으로 그렸다. 뻔히 보이면 희망을 갖기 어려운 까닭일까?  

로마의 유명한 유적 판테온Pantheon은 모든pan 신theos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판테온이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었던 영국의 존 밀턴John Milton은 성경을 바탕으로 지은 서사시 『실낙원』 Paradise Lost에서 판데모니엄pandemonium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이 단어는 모든 악마demon가 모이는 지옥 한가운데 세워진 궁전을 의미한다. 한국어로는 복마전, 아수라장, 혼란의 상태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판데믹 초기, 많은 나라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범 지구적 예외상태에 직면했고, 그 상태는 매우 혼란스러운 판데모니엄과 비슷했었다. 


모든 것, 전부를 의미하는 판Pan은 사실 일종의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다. 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양신의 이름인데, 판은 온갖 동식물이 모두pan 섞여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갖가지 요소가 모두 섞여 있으니 그 모습은 매우 그로테스크grotesque 하다. 당연히 누구라도 판Pan을 보게되면 그 혐오감과 공포감에 온몸이 얼어붙게 된다. 그래서 그런 극도의 공황상태를 패닉Panic이라고 부른다. 


고슴도치도 좋아하는 짝이 있고, 선인장으로도 날아오는 나비가 있듯이 판에게도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이름은 슈링크스Syrinx였는데,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요정이었다. 슈링크스Syrinx는 그리스어로는 갈대를 의미한다. 


흉측한 판의 집요한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슈링크스는 강물에 뛰어들었고, 결국 그녀는 강가의 갈대가 된다. 판은 갈대로 변한 슈링크스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판은 그 갈대로 피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팬플룻Pan flute 혹은 팬파이프panpipes로 불린다. 판은 아름다운 음색의 팬플룻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슈링크스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주사기를 의미하는 시린지syringe에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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