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Amor Fati!
오래전 유행했던 트롯트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라틴어 의미로는 보통 ‘운명을 사랑하라’혹은 ‘운명같은 사랑’으로 이해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사상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라고 알려진 니체의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등장하는데, 영원히 다시 반복되어 되돌아오며, 인류가 존속하는 한 꺼지지 않는 그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존재의 위대함에 대해 내가 말하는 것은 아모르 파티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서도 과거에 대해서도 영원히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감추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필연적인 것을 견디는 것. 모든 이상주의는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들 앞에서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해라.
My formula for greatness in a human being is amor fati: that one wants nothing to be different, not forward, not backward, not in all eternity. Not merely bear what is necessary, still less conceal it—all idealism is mendacity in the face of what is necessary—but love it.
라틴어 fati는 영어에서 운명을 의미하는 fate와 형태가 비슷하게 보인다. 라틴어fati의 어원은 말하다fa-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고, 결국 운명을 의미하는 fate가 되었다. 운명이라는 단어에 말한다는 뜻의 fa-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절묘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운명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주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간은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운명은 무슨일을 겪을 것인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것을 미리 알게 되어야만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운명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운명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운명으로 인식하는 경우와 운명을 의식하지 않는 경우만 있을 뿐.
우화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페이블fable에도 역시 말한다는 의미의fa-가 포함되어 있다. 이솝우화나 톨스토이의 우화에서처럼 우화는 동물이나 사물을 매개로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화라는 단어 fable과 운명을 의미하는 단어 fate가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지나간 삶의 경험을 우화로 삼아 앞으로 다가올 운명의 방향을 정하는 지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운명의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중요한 상태는 fatal이라고 하고 이 단어는 보통 치명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린아이를 유아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infant라고 한다. infant는 단순한 단어 같지만, 반대를 의미하는 접두어 in-, 말한다는 의미의 fa-, 그리고 행동의 주체를 의미하는 접미사 –nt로 구성된 말이다. 결국 유아는 말을 아직 못하는 아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동화는 fairy tale이라고 한다. 요정을 의미하는 fairy에도 역시 fa-라는 요소가 보이는데, 요정fairy이 이야기속의 존재, 가공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원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엮여진다.
언어와 관련한 대표적인 질병인 실어증은 영어로 aphasia 라고 한다. fa-소리가 포함된 phasis는 말한다는 뜻이고, 앞의 접두사 a-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원으로 분석해보면 말하는 것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smart phone이전, 옛날(?)엔 텔레폰telephone이었다. 텔레폰은 멀리에서tele- 말한다phone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전화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 폰phone의 pho-는 스펠링은 다르지만 말한다는 뜻의 fa-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래서 phone은 말한다는 뜻, 소리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라는 명칭이 텔레폰을 완전히 대체했지만 지구 반대편의 상대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텔레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거 아닐까?
어린 아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악기중 하나는 실로폰xylophone이다. 딩동댕동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는 가공이나 복잡함 없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학교앞 문방구에서 파는 실로폰은 대부분 철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원래 실로폰은 나무로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실로폰이라는 말 자체가 나무의xylo 소리phone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xylo-는 나무를 의미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껌의 종류인 자일리톨은 xylitol 이라고 쓰는데, 어원이 관계가 있으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심증으로는 엮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전으로는 명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았다. 자일리톨은 그냥 졸릴 때 씹는 껌으로만!
운명을 의미하는 말은 destiny도 있다. 영어사전에 풀이된 것을 근거로 의미의 차이를 살펴본다면, fate는 미리 정해진 경로course라고 할 수 있고, destiny는 앞으로 벌어지도록 예정된 사건event이라는 의미로 풀이되어 있다. 목적지를 의미하는 destination이라는 말은 여행이라는 사건의 끝, 여행의 종료라는 사건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이라는 공포영화가 있었다. 주인공들은 간발의 차이로 비행기 사고를 피하게 되지만, 결국 다른 사고로 인해 좌석번호 순서대로 죽게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벌어질 일은 끝까지 해당본인에게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프로이트는 예전에 이렇게 말한적 있다. “해부학적 구조는 운명이다.” 영역본에서 이 말은 Anatomy is destiny. 로 번역되었다. 운율까지 생각한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을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로는 Lot이 있다. 다소 섬뜩할 수 있는 다른 운명을 의미하는 말과 달리 Lot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각자의 몫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된 물건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주사위에서 나뭇가지 작대기등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신의 몫을 결정하기 위해 다양하게 사용된 것들을 lot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몫은 자신이 선택한 번호를 적은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된다. 복권을 의미하는 lottery는 이러한 lot에서 파생된 말이다. 영어의 lottery는 프랑스어로 loto, 그리고 이탈리아어에서 lotto에 해당한다. lotto는 아주 많다는 a lot의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영어에서도 lotto와 소리가 비슷한 lotta가 a lot of 의 구어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60년대 대표적인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노래 whole lotta love의 강렬한 사운드가 생각난다. 영어권에서 운명을 의미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는 것처럼, 동양에도 운명을 의미하는 다양한 용어가 존재한다.
사실 운명運命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fate이 의미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수 없다. 운명은 운運과 명命이라는 단어의 결합이다. 운運은 한자의 뜻 그대로 움직이고 이동한다는 뜻이고, 명命은 하늘에서 미리 정해준 성격과 특성, 일종의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아레테arete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레테는 탁월함을 의미하지만, 동식물이 갖고 있는 그 고유의 성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하늘로 자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은 곧 나무의 운명과 같은 것이다. 명은 변할수 없다. 그러므로, 운명이라는 단어는 변하는 요소와 변할수 없는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항간에서 이해되는 것처럼, 운명이 획일적으로 결정된 미래라고만 이해할수 없는 이유다.
왕충이 『논형』에서 논했던 인간의 운명도 생각해 볼 만하다. 왕충은 운명을 정명, 수명, 조명으로 나눴다. 정명은 타고난 상이 좋아서 행동으로 복을 구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길하게 인생이 풀린다. 수명隨命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복을 얻거나 화를 입는다. 조명漕命은 자신의 행동과 관계없이 혹은 심지어 선을 행하였음에도 나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명대 명리서인 『삼명통회』를 저술한 만육오 역시 운명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기록을 남겼다. “사람이 뜻을 정하여 노력할 것 같으면 하늘도 능히 이길 수 있다.” 세간에 알려진것처럼 명리학은 운명을 무조건적인 단순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에서 말하는 운명과 동양에서 말하는 운명은 왠지 필연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따로따로 포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모든 단어의 의미를 하나로 모으면 총체적인 운명의 의미가 될까?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불원천 하불우인上不怨天 下不尤人”
자신의 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