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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un 07. 2024

펜트하우스에 스위트룸 있어요?

스위트룸suite room이 스위트룸sweet room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크게 의심할 여지도 별로 없었던 것이,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위해 예약하는 호텔의 객실이라면 달콤하다는 뜻의 스위트stweet라는 단어가 쓰인 것이 자연스러울 거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그 스위트룸의 스위트는 달콤한 스위트sweet가 아니라, 주방과 거실이 딸려 있다는 뜻에서 스위트suite다.


일행들과 함께 묶기 위해서 추가로 연결된 방들, 이를테면 거실이나 주방등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미에 충실하게 말을 옮겨보면 추가객실연결된 방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트룸이 스위트sweet한것에서 좀 멀어졌다.


스위트룸suite room에 사용된 단어 suite는 원래 수행원들, 시종, 일행들을 의미했다.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단어들도 역시 비슷하게 따라간다, 시중들다는 의미가 있다. 영어단어 pursue는 추구한다, 뒤쫒다는 의미가 있는데, 역시 sue-의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다. 버트란트 러셀이 썼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의 영어 제목은 The Pursuit of Happiness였다. Pursue의 명사형은 pursuit다.


정장 스타일의 의복을 의미하는 수트suit라는 단어도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요즘은 양복이라는 말보다 수트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양복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라떼의 어휘가 되어 버렸다. suite라는 말이 시종일행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시종들은 일종의 유니폼처럼 직책에 맞는 복장을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suite에는 특정한 의복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특별한 복장은 일정한 순서sequence와 종류가 있다. 수트는 자켓, 조끼, 셔츠, 바지, 구두 등으로 완벽한 수트를 갖춘다는 것은 해당 의복들을 순서대로 주루륵 다 입어야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위트룸suite room에서 보았던 “딸려 있다는” 의미는 복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트는 딸려있는 옷들을 함께 갖춰 입어야 한다.  


뒤따른다는 뜻의 어원에 해당하는 부분은 많은 단어에서 sec-로 나타난다. 소리는 시ㅋ-정도로 나타나는데, 뒤따른다는 의미가 핵심이다. 흔히 넘버 원 다음을 의미하는 2인자를 second라고 하는데, 이 단어 역시, 첫 번째first를 뒤따라 오기 때문에 second가 된 것이다.


영화에서 이어지는 장면을 시퀀스sequence라고 하는데, 시퀀스는 순서, 배열이라는 뜻이 있다. 하나가 놓여지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들이 배열된 것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하나의 장면 뒤로 이어오는 장면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비슷하게 뒤로온다는 뜻에서 시퀄sequel이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sec-가 seq-로 달라졌다. 특히 영화가 아주 대중적인 문화가 되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대부분 뒤이어지는 후속편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시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속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후속편들의 시리즈가 3편, 4편, 5편으로 이어지면서 속편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나 보다.


사회를 의미하는 society에도 뒤따른다, 모인다는 뜻을 가진sec-의 어원이 society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 스펠링만 soc-로 살짝 변형되었다. society라는 말이 처음 전해졌을 때, 이 단어는 어떻게 사회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을까? 이 경우, society라는 단어가 사용된 맥락보다, 단어의 어원을 참고로 해서 사회社會라는 번역어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라는 한자에는 조직이나, 집단이라는 의미보다, 모인다는 의미가 더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社會라는 단어는 모일사社와 모일회會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뒤따라 모여들었다는 의미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을 때, 집단이 되고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society라는 단어를 사회로 번역한 것은 어원을 충실히 분석해서 만든 결과로 보인다.


펜트하우스penthouse는 스위트룸과 좀 다른 럭셔리 공간이다. 스위트룸이 호텔의 최고급 객실이라면, 펜트하우스는 고급고층주택을 의미한다. 대부분 건물 꼭대기 탑층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어로 pente는 경사slope를 의미하는데, 과거 주택의 꼭대기 지붕이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을 말한다. 펜트하우스는 그런 기울어진 지붕 아래의 공간을 의미했던 것으로 시작했다. 역시 어떤 공간에 딸려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apentise라고 부르던 것이 영어의 house와 결합되어 penthouse가 되었다. 주택의 맨 꼭대기 층 지붕 아래 공간은 다락방 같은 곳이지만 20세기 초부터 고급 주택을 의미하게 되었다.

넷플리스에 소개된 최근의 영화중에 <인사이드>Inside라는 작품이 있다.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이 어느 호화로운 펜트하우스penthouse에 침입한다. 그곳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로 알려진 에곤 쉴레의 작품, 특히 그의 자화상이 있었다. 도둑은 쉴레의 그림을 챙기고 그곳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보안장치에 문제가 생기면서 펜트하우스 전체가 일종의 패닉룸Panic room이 되어 버린다. 인공지능에 의해서 조절되는 펜트하우스는 전체가 외부와 단절되면서 고급 감옥이 되어, 도둑은 오도가도 못하고 그곳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폭주하는 보안시스템은 집 전체를 거대한 사막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냉기가득한 냉장고로 만들기를 반복한다.


자신의 공간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에 적의를 가득 품은듯한 펜트하우스는 주인공이 탈출을 시도하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살아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너는 내 손안에 있다는 듯이, 그의 모든 시도는 철저하게 좌절된다. 애초에 그가 예술품을 훔치려고 침입했던 것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그가 펜트하우스를 탈출하기 위해 시도하는 온갖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행위는 마치 현대미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어느 예술가가 쉴레의 자화상을 미끼로 행위예술을 의도하고 있는 것처럼 결말을 예상해보기도 했다. 그가 천창을 통해 탈출하기 위해 쌓아올린 피라미드는 그 자체로 어떤 현대미술품같이 연출되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Jane Eyre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특히, 페미니즘과 결부되면서 작품속에서 마이너한 캐릭터였던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 메이슨Bertha Mason을 소재로 산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The Madwoman in the Attic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원래 와이프를 다락방에 감금시켜 놓은채 제인 에어와 결혼하려고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어쨌거나, 옛날엔 다락방 공간은 그런 용도(?)로 쓰이던 곳이었다.


Pen-이라는 의미가 어디에 달려있다, 매달려 있다, 딸려 있다는 의미에서 결합되는 단어중에는 목걸이를 의미하는 pendant가 있다. 말 그대로 목에 매달려 있는 의미가 충실하게 반영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목걸이처럼 높은 곳에 매달려서 좌우로 흔들리는 진자는 pendulum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의미는 그의 생존이 누군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존한다는 의미의 단어depend에도 pen-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de-는 아래, pend는 매달려 있는 것, 그래서 어디 아래 매달려 있는 매우 의존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비슷하게 suspend라는 단어가 있다. 역시 아래를 의미하는 sus-와 매달리다는 pend-로 결합되어 있지만 의미는 다르다. 아래에 매달리기 한다는 뜻에서 과거 공직에서 쫒아내거나 일시적으로 자리에서 내쫒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정학의 의미로, 다른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결정이 유보된 상태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다.


참, 바지를 입을때 허리를 잡아주는 서스펜더suspender도 역시 관계있는 말이다.


알프레드 히치코크Alfred Hitchcock의 영화를 보면 스릴thrill과 서스펜스suspense를 느낄수 있는데, 서스펜스는 suspend의 명사형이다. 서스펜스suspense는 불안, 걱정, 뭔가 결정안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곡예사가 줄 끝에 매달려 있는 것같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상기시킨다.


어떤 책들 뒤에는 부록appendix이 붙어있다. 일종의 색인처럼 책속의 주제어를 알파벳 순으로 나열해서 책의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책의 맨 뒤에 붙어 있기 때문에, 딸려 있다는 의미에서 appendix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또 사람의 신체 부위인 맹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맹장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매달려 있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달려 있다”는 말은  “딸려 있다”와 같은 어원이 아닐까? 확인하긴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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