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2부. 바르셀로나 직장인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2부 - 바르셀로나 직장인 이야기
2-3. 한국과의 작별 인사
오퍼레터를 받음과 동시에 미리 신청해 두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발급되었다. 당시에는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기에 비자 신청자가 많지 않았는지, 신청한 지 단 일주일 만에 비자를 받아볼 수 있었다.
오퍼레터를 보고서도 쉽사리 믿기지 않았던 나는 엄마와 함께 이게 진짜가 맞냐며 혹시 사기면 어쩌지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했다. 그러나 눈을 수차례 비비고 다시 봐도 내 영문 이름이 적힌 오퍼레터가 맞았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오퍼레터에 전자서명을 마친 뒤 메일 발송을 클릭하고, 회사 온보딩 절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출국 및 입사 날짜가 정해지고, 이제는 반년 동안 정이 들었던 서울의 보금자리를 떠날 차례였다. 적어도 1년은 채우게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갑작스러운 기회로 이렇게 떠날 줄이야.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다.
영등포의 자취방은 내게 의미가 컸다. 설레는 첫 자취인 데다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그 공간을 나의 취향으로 가득 물들였었다. 그래도 늘 스페인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면서 이 집 또한 후련하게 떠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마지막 날 밤이 되니 그곳에서 울고 웃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드등을 켜고 창밖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가족들과 이사를 마치고 바닥에 앉아 짜장면을 먹었던 날.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거의 한 달 동안 했던 집들이, 그리고 그들과 이곳에서 나눴던 대화와 함께한 추억들. 출근 전, 퇴근 후 온전히 나와의 시간을 보내며 자기 계발에 몰두했던 시간들. 수없이 CV를 고치고 제출하고 때로는 화상 면접을 봤던 내 책상,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던 날들. 뜨는 아침 해를 보며 오늘도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 보자고 다짐했던 나날들.
비록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지난 6개월은 나를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정이 너무나도 넘쳐 공간에마저도 정이 들어버리는 나는 정든 나의 첫 ‘까사 쏘야(쏘야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이런 보금자리를 갖게 해 달라는 소망을 품은 채.
다음 날, 나는 출국 전까지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귀향길에 올랐다. 스페인에 가기 전, 한 달의 시간은 그동안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자주 못 뵈었던 부모님과 추억을 쌓기로 결정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집에서 독립하여 줄곧 떨어져 지냈던 나와 부모님. 우리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스페인에 가서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또 늘 목표를 쫓으며 쉼 없이 채찍질을 해왔던 나 스스로에게도 휴식을 주었다. 좋아하는 운동에 전념하면서 새롭게 복싱을 배워보기도 하고, 그동안 이직 준비를 하느라 미뤄왔던 글쓰기도 시작했고, 커리어 코칭, 영어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 등 사이드잡도 벌려 나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러 먼 길을 와 준 고마운 친구들과의 시간들까지. 온전히 하고 싶은 것들로만 채우며 꿀 같은 휴식을 가졌다.
그렇게 알찬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고 드디어.
출국 날이 되었다.
스페인과 저의 우연, 인연, 그리고 필연까지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지난 화] https://brunch.co.kr/@soyayspain/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