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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진 EUGENIA Sep 15. 2024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하나의 동기, 교훈, 플롯 따위로 단정 지어지지 않는 삶과 시대의 이야기



이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노예해방 이전의 미국 사회. 철학자 쇼펜하우어, 음악가 쇼팽, 슈만 등이 살았던 시기도 이 시기 즈음이다. 쇼펜하우어가 세계여행에서 끌려가는 노예들을 보고 생지옥을 느끼는, 그를 철저한 염세주의자로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음악가 쇼팽과 슈만이 고통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극한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그 시대".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역시도 이 어두운 사회의 산물이다. 어두운 시대 속 고통받는 개인을 그린 이야기. 그렇게 허클베리 핀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과부댁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그를 보호한다고 하는 정부로부터도, 뗏목을 타고 도망치며 모험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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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책을 오래 읽는 편이지만, 허클베리 핀은 유독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던 책 중 하나였다. 이유는 소설 속 허클베리 핀처럼, 나도 누군가로부터 도망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 즈음은 끔찍한 무언가로부터 도망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도망은, 아버지로부터, 과부댁으로부터, 정부로부터 기인했다. 그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던 그 모든 고통들을 뒤로 하고, 작은 뗏목에 몸을 맡겨 무작정 도망쳤다. 때로는 쫓아오는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면서.


소설 속 허클베리 핀은 살면서 한 번이라도 고난을 겪고 도망쳐봤다면, 쉽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나에게도 허클베리 핀은 모험의 교훈을 주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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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이 무색하게도, 작가 마크 트웨인은 시대적 상황 속 개인의 비애를 담은 소설을 쓰면서도, 이 이야기에서 아주 철저하게 교훈을 찾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이야기에서 어떠한 동기를 찾으려는 자는 기소될 것이다."
"persons attempting to find a motive in this narrative will be prosecuted."
"이 이야기에서 어떠한 교훈을 찾으려는 자는 추방될 것이다."
"persons attempting to find a moral in this narrative will be banished."
"이 이야기에서 어떠한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될 것이다."
"persons attempting to find a plot in this narrative will be shot."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



이러한 작가의 말을 어떤 의도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마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고난을 만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살아가며 겪어나가는 그 고통을, 일률적인 하나의 동기, 교훈, 플롯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나의 그것으로 살아지지 않는, 개인과 상황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만들어나가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지는 삶. 그게 하나의 동기, 교훈, 플롯으로 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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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낭만주의의 아름다움도, 시작은 부조리에서 도망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를 단 하나의 교훈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도망이란, 나로부터,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진다는 걸 아주 고약하게, 뼛속 깊이를 넘어 혈관 한줄기까지도 기억한다. 도망쳐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도망쳤지만, 도주의 끝에 마주했던 수없이 많은 죄책감. 그렇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역설과, 모험과 부조리 속에서 기어코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삶. 그렇게 얻어 낸 역설과 희망을 믿어야만, 삶을 계속할 이유를 찾을 수 있으니까. 이 소설로 시대의 비애를 관통하는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없듯, 나 역시도 태초에 얻은 하나의 교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내 삶은 이미 없었을 것이다.



내가 도망자이듯, 아마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고통으로부터의 도망자일 것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며 아름다움의 한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고통을, 기꺼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도망에서 시작된 모험을 긍정하고, 때때로 뒤돌아보길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도망쳐온 고통을 부정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이며, 함부로 삶을 고통만으로 점철시키지 않기 위한 나의 방식이다.


진정한 자유란, 자유로부터 파생되는 고통마저 끌어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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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와 모험, 부조리와 낭만, 부조리와 삶.

다른 의미의 나열처럼 보이는 이 단어들은 하나의 동기, 교훈, 플롯으로 엮이지 않지만, 서로가 있기에 공존하는 그 시대를 담은 말들이기도 하다.


낭만주의 속 아름다움이 성행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두운 면 속에서도, 삶의 희망과 낭만시대의 아름다움이 그랬듯,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역시도, 어두운 부조리 속에 또 다른 희망의 향기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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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희망의 바깥은 없다" 한 구절을 남겨 본다.


"절망을 안고 뒹굴어라 절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란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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