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국악으로 영화 읽기> 전란에서는 왜 "갈색" 사자춤을 췄을까?
(스포가 거의 없으므로, 영화를 보기 전에 읽어도 괜찮은 글임을 서두에 알립니다)
2024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강동원, 박정민 배우 주연의 영화.
강동원 배우님은 유난히 한국적인 소재가 도드라진 영화의 배역을 많이 맡으시는 것 같다. 전우치의 도사 전우치역, 천박사 퇴마일기의 천박사 등. 전우치의 경우는 왕의 행차나 거행 때 쓰인 음악인 취타를 덧입힌 궁중악사 장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었다. 개인적으로 진짜 왕 앞에서 가짜 전우치가 취타를 연주하게 하며 등장하는 연출이 해학적이어서 좋아했다.
얼마 전 개봉한 [전, 란]은 나로 하여금 “얼쑤얼쑤”를 뒤잇는 한국적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물씬 가져오게 했다.
영화 [전, 란]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양반인 종려(박정민 분)와 천민인 천영(강동원 분)의 뒤틀릴 수밖에 없던 우정을 다룬다.
임진왜란과 양반의 횡포라는 극 속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에 걸맞은 여러 가지 국악적 요소를 차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꽤나 상세한 음악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 같아 음악감독을 찾아보니 역시, 올드보이로도 유명한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작품.
오늘은 그래서 전, 란의 국악적 요소로써 K-컬처를 살펴보고자 한다. 크게 3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농악 또는 풍물놀이, 쾌재나 칭칭 나네, 북청사자놀음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국가무형유산 등에 등재된 우리 음악이라는 점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K-컬처의 힘을 보여준다.
전, 란의 한국적인 멋 1 : 풍물놀이와 버나 돌리기
특히 영화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는 풍물놀이, 즉 농악은 징, 꽹과리, 장구 등이 어울려, 선반처럼 생긴 버나놀이를 한다. 특히 버나놀이의 배경음악이 되는 풍물은 영화 속에서 일어난 민중의 문화를 음악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풍물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실릴 만큼, 상고시대 때부터 내려와 그 역사가 매우 깊은 민중음악이기 때문. 오랜 한국적인 정서를 담을 수밖에 없는 시대를 거쳐 현존하는 음악이 바로 풍물놀이이다.
전, 란의 한국적인 멋 2: 쾌재나 청청이 나가네
또한 전, 란 중에 민중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쾌지나 칭칭 나네"이다.
영화 전, 란에서 "쾌지나 칭칭 나네"의 활용이 재밌는 것은 현재에 내려오는 "쾌지나 칭칭 나네"의 가사가 아닌, "쾌재나 청청이 나가네"라는 가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민요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기 마련인데, 쾌지나 칭칭 나네의 경우는 고성김메기소리의 향토민요로 쓰이면서 농악의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는 설, 월월이 청청나네에서 유래하여 달이 밝다는 의미를 나타냈다는 설, 불교 관련설 등 많은 유래가 존재한다. 그러나 본 영화에서는 "쾌재나 청청이 나가네"라는 가사를 활용하여 민요 "쾌지나 칭칭 나네"의 전쟁 유래설, 즉 쾌재(아주 즐거운 호재)나, 임진왜란 때 일본인 장수인 '가등청정'이 나간다라는 유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중 의병의 승리 서사를 담는 영화와 퍽 어울리는 조합이다.
전, 란의 한국적인 멋 3: 양반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북청사자놀음
극의 마지막에는 극 중 천영이가 동료와 함께 대동교를 잇는 새로운 종파를 모의하는 장면으로 끝나게 된다. 바로 이때 엔딩으로 사자춤으로 알려진, 북청사자놀음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사자춤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의 사자춤이 있다. 전란에 등장하는 사자춤은 북청사자놀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하필, 북청사자놀음을 차용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의 사자춤을 비교해보자. 봉산탈춤의 사자춤은 흰색 사자탈이 대표적이고, 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다. 실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봉산탈춤의 사자춤을 "부처님이 보낸 사자가 내려와 목중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목중들이 회개하겠다는 말을 듣고 용서하고 함께 춤을 춘다"고 기술된다. 또한 봉산탈춤 안에는 사자춤이 6번째 이야기일만큼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가있기 때문에, 전란에서의 주제의식을 다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했다.
이에 비해 북청사자놀음은 사자놀음만을 중점으로, 양반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풀어나가는 민속놀이이다. 때문에 민중의 놀이 속에서 전하는 북청사자놀음의 주제의식은, 전란에서도 이야기하는 조선 시대 중기부터 싹트는 양반제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드러내주는 데 다른 사자춤 보다도 효과적이다.
나가며,
전, 란은 넷플릭스에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나라의 비서구권 차트에 올랐다고 들었다. 그것을 보고 든 생각은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의 힘. 로제의 아파트나 영화 오징어 게임 등 여러 한국적인 소재가 주목을 받는 지금, 영화를 감상하는 다른 분들도 여러 국악적인 면모에 흥미를 느끼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다들 넷플릭스에서, 전, 란, 즐감! ^_^
전, 란 관련... 투머치 토커 드림
덧 1. 판소리 풍의 대사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 또한 재밌게 봤는데, 김상만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영화 춘향가를 오마주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판소리 중 적벽가를 패러디해도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조, 관우 등 전쟁 중에 발생한 영웅담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삼국지연의에 비해, 판소리 적벽가는 영웅담보다 "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서러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 란과 결이 비슷하다. 삼국지에서 파생된 이야기 중 군사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설움에 주목하는 건, 우리나라 판소리 사설 적벽가가 가진 특별한 주제의식으로 여겨진다.
덧 2. 요즘 들어서 전통적인 국악 사운드에 입각한 영화도 더욱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천박사 퇴마일기는 서양음악의 북과 소리가 이질적이지 않은 소리북을 사용하여 국악을 표현하고 무속신앙을 주제로 함에도 무악이 아닌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주류로 끌고 갔다. 천박사 퇴마일기 뿐만 아니라 국악을 소재로 했어도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 개인적으로는 김치 파스타를 먹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런데 근래 개봉한 파묘나 전란은 전통적인 국악의 사운드를 살려서 좋았다. 극적 전개 방식에 따라서도 적합한 음악이 다르고 순전히 취향의 차이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무속신앙을 다룬 두 영화, 파묘와 천박사 퇴마일기의 음악을 비교하는 칼럼도 쓸 예정.
덧 3. 풍물은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어, 전란의 풍물은 무슨 지역의 풍물일지를 상상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듣다 보면 잡색이 있긴 있고, 리듬적으로 강렬한 느낌이 있어 영남지역의 풍물과 비슷한가? 싶은데, 상모나 부포 또한 쓰지 않아서 지역적 색깔이 모호하다. 그리고 북청사자놀이는 함경도 지역 즈음에서 성행했던 것이라 지역적으로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함경도나 영남이나 민요로 보면 동부로 퉁쳐지는 지역이기도 하고, 영화 내에서 지역을 따로 상정하진 않았고, 지역적으로 이동이 많은 사당패의 음악이니, 풍물 또한 음악적으로도 다소 모호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