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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0. 2022

선생님도 학생과의 헤어짐은 어렵다

피아노 학원 강사로 일했던 2021년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대학원 입학 후 이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한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로 근속한 것이었다. 학원 특성상 등하원 지도까지 담당했기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유난히 많은 학생도 있었고, 1년여의 시간을 근무하면서 나에게만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생겨났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는 방식의 수업이었기에 아이마다 소통할 시간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진심을 내어주는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고 싶었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피아노를 칠 때 기본이 되는 자세부터 시작해 넓게는 인성적인 부분에서의 지도까지. 나름대로 좋은 티칭이란,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벌써 학원 강사를 그만둔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퇴직하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일은 계속 생겨났지만 근래 들어서는 다른 일들을 하게 되어 현재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학생은 없다.


그래도 아직도 자신과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말하던 순수한 초대를 기억하고, 등하원 때 조잘대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앞다투어 보고하던 아이들의 수다, 나를 보면 선생님 외치며 달려와서 와락 안기던 그 총총거림, 실수에 시무룩하던 아이의 축 처진 어깨와 내가 건넨 용기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수많은 아이들의 따듯한 눈빛,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애써 부정하며 울음을 삼키던 그 표정들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물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어려운 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다. 학원에 오기 싫어 울던 아이의 눈을 보면서 나도 울고 싶었고, 아이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었는데도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때 절망감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힘듦에도 학생과의 마지막은 어려웠다.


어릴 적 학원 선생님이 그만두면 제일 먼저 울었던 아이가 나였어서 그랬을까.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시던 선생님의 마음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되고 나서도 학생들과의 안녕은 어려웠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가 잘 안 되는 칠칠맞은 초짜 선생님.


그래도 그런 시간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선생님들께 나도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랐구나 깨닫게 되었다.


사랑의 형태에는 아주 다양한 것이 있고, 요즈음은 더더욱 내가 선생님으로서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에게 받은 따스한 말 한마디, 순간의 다정함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사유하면서.


주변에 그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삶의 어느 순간 절망 속을 헤맬 때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한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이럴 때는 신을 붙들고 나를 지나간 학생들이 삶 속에서 사랑을 느끼길 바란다는 것.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나와 보낸 시간을 까맣게 잊겠지만, 그동안 학생과 선생으로 만나 주고받은 따스함을 무의식 속에라도 간직하기를.


아무튼 그들이 보여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또 앞으로 만날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지. 좋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좋은 삶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플라톤의 교육관처럼 이데아를 본 경험해본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상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니, 부끄럽지 않게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자기를 잊지 말라던 학생 H가 (강제) 수여한 목걸이. 눈을 감으라길래 장난치는 줄 알고 안 감는다고 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선물이라며 걸어 줬다. 덕분에 힘들 때마다 꺼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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