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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진 EUGENIA Mar 26. 2023

<음악으로 세상 읽기> 러시아 인형처럼 2 결말 해석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리스트의 사랑의 꿈 Liebestraum


Preview 정신분석학, 프로이트, 그리고 음악



러시아 인형처럼은 음악학을 전공한 내가 해석하기로는 정신분석학적 비유와 음악적 상징이 굉장히 잘 어우러진 드라마로 읽힌다.


예컨대 시즌 1에서 나오는 주인공 나디아의 어린 환영은 정신분석학에서의 '내면 아이'의 개념으로서, 성인이 된 나디아 앞에 나타난 피를 토하는 어린 나디아의 혼령이 유년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디아가 유년 시절 적절한 주양육자와의 관계를 쌓지 못했다는 건 시즌 1를 지나며 자명해졌다. 그렇게 자라온 나디아는 죽음을 재경험하며 다시 몇 번이고 자신의 36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시즌 1에서 인생을 새롭게 살고 죽으며, 끊임없는 고통을 경험한다. 마치 평행한 모양으로 계속되는 러시아 인형처럼, 혹은 마치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재경험하는 상처 입은 사람처럼.


마침내 주인공이 맞이한 마지막 러시아 인형은 어떤 양태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2 마지막화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인형처럼 2 마지막화
: 리스트의 ‘사랑의 꿈’, 그리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Scene: 나디아는 왜 아이를 안고, 지하의 수면을 헤쳐 나가는가?

마지막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던 지하철역에서 충돌을 맞은 주인공 나디아와 앨런은 알 수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떨어진다. 이때 나디아는 떨어지는 갓난 아이 - 과거에서 데려 온 자신의 어릴 적 모습- 를 붙잡는다. 그리고 이때 나디아는 나오는 그 공허한 물속을 헤매며 부유하는 보석꾸러미 가방을 뒤로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아이를 안은 채, 출구를 향해 나아간다. 


Liszt - Liebestraum

이때 물속을 헤매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음악이 리스트의 사랑의 꿈. 이 해수면을 해치며 나오는 사랑의 꿈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조성진 연주, 리스트 Liszt의 사랑의 꿈 Liebestraum

& Freud

해당 장면을 다시 되짚어보자. 지하철역에서의 충돌은 과거를 상징하는 열차와 미래를 상징하는 열차의 추돌 장면이다. 이 추돌로 나디아와 앨런, 두 주인공은 지하철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와 과거의 상충된 갈등을 바탕으로 물이 가득한 어딘가의 수면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여기서 수면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물음에 수면은 물의 해수면이자 꿈의 수면이라는 답을 찾았다. 물의 해수면은 장면을 통해서 드러나지만, 꿈의 수면은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라는 제목을 통하여 은유된다.


장면의 해수면, 그리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의 의미에 대하여 되새기기 위하여서는 프로이트 이론에서 꿈의 상징성에 대하여 되짚어 보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썼을 만큼, 꿈이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그는 꿈의 무의식을 해수면 속에 잠재된 큰 빙하로 비유하곤 했는데, 이때 그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은 해수면 아래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꿈이나 습관을 통하여 물에 떠있는 빙산의 일부분처럼 자그마한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게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프로이트는 꿈은 곧 무의식의 발현이자 해수면 속에 거대한 빙하를 감춘 빙산이라고 본 것.


이러한 측면에서 나디아가 해수면에 떠오르는 보석뭉텅이 가방을 버리고 어린 자신을 안아주며 떠날 때, 본 장면은 무의식의 해수면과 그 해수면 속에 떠오른 돈과 어린 자신이 나디아에게 중요한 자아개념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음악을 활용하는데, 이 때의 음악이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다. 꿈을 주제로 한 음악매체가 주인공 나디아의 무의식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 장면을 바라보면, 이 장면과 음악은 극의 결말을 향해 가며, 반복되는 러시아 인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나디아의 깊은 내면 속 잠재의식에는 돈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나디아는 돈 가방을 버리고, 자신이 안고 있는 아이를 보며 다시 나아간다. 이러한 장면을 통하여 나디아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했던 근원적 결핍은 결코 세속적인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발달과정에서 충족시키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결핍, 즉 자신의 어린 면을 안아주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헤쳐나간 해수면을 지나고 나서, 그 끝에서는 자신에게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해 주었던,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의 절친, 루스를 만난다. 남자 주인공이었던 앨런 역시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조부모를 만난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자각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라는 음악적 내러티브를 만나 더욱 극대화된다.



치유의 과정: 겹겹의 트라우마를 벗고, 진정한 나를 만나기


작품의 제목인 러시아 인형-마트로시카-은, 큰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본 넷플릭스 시리즈는 그 연쇄된 인형의 굴레를 트라우마의 치유 과정이라는 서사로 표현한 것 아닐까?


가장 큰 인형을 만나는 일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치유의 과정은 자신을 알고 문제를 자각하는 것에서 부터 치유의 여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극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나디아와 앨런은 자신의 삶을 처절하게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근원과 본질에 대해서 알아간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 치유의 여정에서 가장 작은 인형인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한 나디아는 자신의 어리고 유약한 면을 안아준다. 이 과정에서 나디아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재경험하기도 하지만 루스, 그리고 자신의 옛애인이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시 느끼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나디아는 자신의 내밀한 자아를 구성하는 무의식을 알고 인정하게 된다. 자신의 잠재의식과 자신을 버티게 했던 사랑의 단편에 대한 자각, 그를 통하여 무수히 재경험되었던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마주함으로써 치유라는 꿈같은 국면을 맞이한다는 것.


때문에 수면을 해치는 도중에 울리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은, 잠재의식인 꿈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사랑과 치유의 서사를 강화시켜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치닫는 러시아 인형처럼을 볼 때마다, 흘러나오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은 나로 하여금 엄청난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이 곡을 따로 놓고 본다면, 사람들은 리스트가 사랑한 연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관점에서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듣다 보면 다르게 읽힌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나를 사랑해 준 양육자 혹은 그에 준하는 누군가 - 주인공 나디아에게는 루스-, 그리고 그들이 느끼게 해 줬던 사랑에 관한 기억의 단편, 그리고 그 힘으로 어린 나를 안아주며 나아가는 치유의 과정에 대한 총체로 읽고 듣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곡의 격정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들과, 그 힘으로 나의 내면아이를 기어코 안아주는 과정에서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나가며 - 인형처럼 안아주는 사랑의 꿈속에서

트라우마처럼 재경험되는 러시아 인형 속에서, 결국 수면으로 상징화된 본질적인 무의식을 마주하게 되는 두 주인공. 그 무의식의 끝에서 마주한 마지막 러시아 인형은 사랑의 기억과 스스로의 내면아이를 안은 자신이었고, 결국 사랑에 의해 꿈꾸면서 현실을 헤쳐나갈 우리란 결론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과거에 겪었던 상실, 결핍 등은 때로는 우리를 구성하는 본질처럼 군다. 시간이 지나면 트라우마가 나인지, 내가 트라우마인지도 모를만큼 깊숙하게. 때로는 그 기억이 희미해도,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해도, 그 흔적은 스스로의 삶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들고, 삶의 고통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의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거울처럼 비추어주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를 살피며 안아주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러시아 인형처럼 끊임없이 숨겨진 본질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함께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본 러시아 인형처럼의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더불어 러시아 인형처럼 반복되고 비슷한 양상의 갈등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내면의 무의식에 잠재된 사랑의 기억으로 나와 타인의 어린 면을 다독여주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


그게 나의 자의적인 해석일지라도, 나는 한동안 리스트 사랑의 꿈을 들으며 나를 견디게 했던 모든 사랑들을 떠올리면서, 내 안의 살고 있는 작고 유약한 내면 아이를 끌어안고 양껏 다독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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