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볕 Feb 07. 2024

오히려 좋았던 하루

흐린 날엔 재즈를~


며칠째 흐린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말엔 날씨가 좋아지길 바랐으나 토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잔뜩 찌푸린 하늘이 거실 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휴일마저 처진 기분으로 지낼 수는 없어서 점심을 먹자마자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할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가까운 동네 공원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차를 타고 좀 더 멀리 나가 나들이 겸 산책을 하고  것인지 두 가지 선택지 에서 잠시 고민하다 주말이니 좀 더 먼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일산 호수공원. 내가 사는 곳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차로 이십여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우리 동네라기보다는 남의 동네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차를 주차해 놓고 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흐린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전세 기분으로 남편과 공원 이곳저곳 발길 닿는 걸었다.


입춘이 다가오니 날이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바람이 차가웠다.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감미로운 선율이 귓가에 감겨왔다. 남편이 에어팟 한쪽을 내 귀에 꽂고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킨 것이었다.


걸을 때 음악을 듣기보단 주변 풍경에 집중하는 나와 달리 그는 늘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듣는다. 좀 전까지 시끄러운 팟캐스트를 듣고 있더니 날씨에 맞게 선곡을 바꾼 모양이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이런 날에 딱 어울리는 농도 짙은 끈적한 음률내게흘러들었다. 음악만 더해졌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중충하게만 보이던 잿빛 하늘은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채색해 놓은 화폭의 한 부분 같았고, 얼음이 낀 호수는 겨울의 정취를 섬세하게 담아낸 엽서처럼 보였다.


흐린 날이라서, 곧 비를 뿌릴 것 같은 먹구름이 가득한 날이라서 오히려 더 좋았다. 현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현상일 뿐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린다.


마음이 일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잘 도닥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오히려 좋아'.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 사고를 끌어내는 이 말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던 날이었다.


 


※ 구독과 공감은 꾸준히 글을 쓰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