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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Mar 27. 2024

"왜 살아야 할까" 자문한 적 있다면 공감할 이야기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고


오래전, 한 아동양육 시설에서 독서논술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화책을 읽어주고 독후 활동을 진행했었는데 내면의 상처로 인해 나 같은 외부인들 - 언제 떠날지 모르는 - 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뿐이긴 해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봉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 부담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일 년을 채우고 관두던 날, 그래도 마지막이니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어 몇 가지의 학용품을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무리하고 나가려는데 생활 담당 교사분이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손 위에 놓인, 아이들이 정성 들여 쓴 손편지와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마련한 문화상품권을 본 순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은 것에 비해 내가 준비한 물품이 너무 약소해 보인 데다, 자신들이 준 마음보다 받은 마음이 적다고 느끼고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라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에 좀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함께 그날의 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이런 감추고 싶은 기억을 비단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끄러운 자신의 밑바닥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된 원작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속의 인물들도 그러했다. 이야기 속 화자인 '나', 내가 만나고자 하는 탈북인 청년 '로', 그리고 '로'의 벨기에 정착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박'. 그들은 모두 감추고 싶은 과거의 모습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이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로가 인터뷰 도중에 기자에게 한 말이었다.
-251p


누군가 나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사는 것, 그것뿐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어 말한다.
-252p


"살아남은 자들, 건강한 자들, 그들은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찾아내는 것 말고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그걸 묻고 싶은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254p


탈북 후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숨어 살다 비극적인 사고로 어머니가 숨진 후, 자신이 살아남기를 바란 모친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엄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브뤼셀에 도착한 '로', 그리고 간암 말기 환자였던 아내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안락사를 도운 '박',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인, 뺨에 혹이 달린 채 살아가는 소녀 윤주를 위해 더 많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추석 연휴로 수술 날짜를 미뤘다가 혹이 악성 종양으로 바뀌어 윤주를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 '나'. 이들은 모두 자신의 행동에 대한 뼈아픈 후회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아픈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벨기에로 떠난다. 우연히 시사 주간지에 실린 한 탈북인 청년의 인터뷰에서 본 '살아남아야 했다'는 강한 당위를 담은 문장에 끌렸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 브뤼셀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삶의 이유를 찾아 나선 여정에서 화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로'에게서 '윤주'를 떠올리며 깊은 연민을 느끼고, 아내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박'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삶의 길 위에 서게 된다.


또 처음엔 그저 이니셜 한 글자에 불과했지만 나중엔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앞에 앉아 있는 탈북인 청년 '로기완'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 즉 '이니셜 K'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상처받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접점을 만들어내는 소설의 구성이 좋았다. 아픔과 절망을 지닌 너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그 고통에 감응하며, 진심 어린 연민을 통해 상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며 자연스레 지난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과거의 봉사활동이 산뜻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부끄럽고 미안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한 행위였기 때문은 아니었나 하는 따끔한 각성이 있었다. 그게 사람들을 만날 때 좀 더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서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호의를 보이면 부담스럽게 생각하거나, 또는 당연하게 여기며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드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사람 간의 만남에서 진심을 기대하기 힘든 세상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눈물까지 애틋함의 시선으로 완성하는 것, 그것은 이니셜 K의 꿈이자 동시에 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 꿈을 위해 나는 쓴다.
-404p,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2011년에서 1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삶은 더 힘들고 팍팍해진 반면 사람들 간의 공감과 연대의 고리는 더 약해졌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인만큼 만남의 형태 역시 감정교류보다는 필요한 것만 주고받는 인스턴트식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냉소와 비관이 팽배한 시대에 진심 어린 공감과 연민에 대해 말하는 이 소설이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진다. 사람을,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 이 소설이 처음 나왔던 10여 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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