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볕 Nov 06. 2024

삶은 수행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자기 학대와 돌봄 사이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겐, 살아가는 건 자기 학대적 행위와 돌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무기력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평소의 루틴을 내려놓고 대충 살다가, 다시 책을 읽고 명상이나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을 바로잡는 식이다.


얼마 전, 가족이 던진 무신경한 말이 가슴에 박혀 기분이 가라앉은 적이 있었다. 결혼 후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산 시간이 길어지면서 심리적 거리감이 생겨서인지 예전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말도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이럴 땐, 손쉽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자극적인 것들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싱크대 아래쪽에 고이 모셔둔(비상식량으로 사 두었지만 자주 먹지 않기 위해 숨겨둔) 라면을 꺼내어 고춧가루까지 팍팍 쳐서 끓여 먹었다. 요즘 노화로 인해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가끔 갖는 치팅데이를 빼고는 저탄수화물 고단백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순간의 유혹에 굴복하고 만 것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오후 6시에 라면을 먹었는데 8시에 또 새우버거를 주문했다. 버거뿐 아니라 최소 주문 금액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끼워 넣은 사이드 메뉴들도 함께 배달되었다. 한번 고삐가 풀린 식욕은 멈출 줄 몰라 음료와 버거를 다 먹고 감자튀김에 닭강정까지 몇 개 집어먹고서야 겨우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평소의 양을 훨씬 넘어서는 식사를 마치고 나니(그것도 늦저녁에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로) 배는 불렀지만 또 다른 공허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하필이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호르몬이 날뛰는 주기까지 맞물려 기분이 더 가라앉았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의 반복된 경험 덕분인지 이번엔 자기 파괴적 모드에서 돌봄 모드로 재빨리 전환했다는 것. 입안 구석구석 양치를 하고 칼로리를 태우는 홈트레이닝 몇 세트를 하고 나니 몸에 죄지은 듯한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문득 살아가는 건 수행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마음을 흔드는 외부의 요소들을 떨쳐내고 평정심을 되찾는 것,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자기를 바로 세우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앞으로의 삶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조금씩 더 단단해져서 자기 학대보다는 나를 돌보고 아끼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