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 Dec 13. 2022

셋째 엄마의 출산휴가

셋째라서 가능한, 그리고 예전엔 몰랐었고 이제는 아는 것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떻게 했다는 말을 참 싫어한다. 뭔가 세상 우주의 원리에 나의 삶을 끼워 넣고 내가 질질 끌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돈을 벌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던가 아이를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다던가 충분히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당연한 명제처럼 느껴질 수 있는 말이지만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면 다르게 살 수 있는 법, 나는 내 구미에 맞게 살짝 다르게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돈을 벌어야 해서 일을 한다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일하기를 선택했다든지 사랑하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이와 시간을 위한 시간을 좀 더 확보하기로 선택했다든지. 결국 같은 말이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말을 넣어줌으로써 그 일을 함에 있어 좀 더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나는 셋째를 낳기로 선택했고, 셋째를 낳아서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셋째를 낳기 직전까지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어떻게 하면 이 출산휴가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가였다. 이미 두 번의 출산휴가를 겪은 나는 이 기간이 즐겁지만은 않은 기간임을 알고 있었다. 출산으로 인해 이미 몸에 충격이 간 상황에서, 생후 90일간의 신생아를 돌보는 것은, 말이 돌보기지 사실상 수발이나 다름없다.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무한 반복되면서 산모는 어른들이 세계로부터 고립이 되고 신체와 정신이 피폐해진다. 첫째와 둘째 때 출산휴가는 모두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다기보다는, 무척 피곤하고 외로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경력직이 좋은 점이 무엇인가. 이전의 실패(?)로부터 더 나은 솔류션을 찾아낸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산후조리를 포함한 나의 이전의 출산휴가를 전면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맘카페에서 알려주는 꿀팁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에게 최적화된 출산휴가 계획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과는 가히 대성공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건강했고, 외롭지 않았고, 세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무엇보다 복귀 이후에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수립해 놓았기에 이 경험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는 산후조리를 건너뛰었다. 보다 정확히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산후조리'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산후조리라고 하면 아이를 낳고 내복을 따숩게 입은 후 미역국이나 사골국만 먹으면서 누워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지 않는가.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스킵했다. 여름 아기니 출산 후 내복은 전혀 입지 않았고, 수유나시와 요가바지,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레깅스를 바로 착장했다. 자궁과 골반 수축을 돕기 위해서였다. 특히 다소 쫀쫀한 레깅스를 입어주면 출산 후 한없이 나른한 일상에서 약간의 텐션이 생겨서인지 보다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미역국이나 사골국도 거의 금기 음식에 가까웠다. 미역국만 두 번 정도 먹었을까. 이미 두 번의 출산으로 내가 젖량이 많은 산모임을 알고 있었고 과도한 보양식, 국물음식은 피해야만 유선염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이 움직였다. 아기를 돌보는데 필요한 움직임은 물론이고, 큰 아이와 둘째를 데리러 가거나, 막내를 데리고 태어난 지 몇 주만에 가벼운 산책을 다니기까지 움직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빠른 자궁수축으로 이어졌다. 몸은 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나에게 맞는 방식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임신 8개월까지 골프 라운딩을 다닌 남들보다 조금 더 튼튼한 산모였고, 진통시간도 비교적 짧게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무엇보다 여름에 출산했기 때문에 하루빨리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던 것도 있었다. 물론 산후조리원에 가며 이러한 방식의 산후조리가 불가함을 알았기에 산후조리원은 가지 않았다.


더불어 무엇보다 신경을 썼던 건, 정신적 산후조리였다.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내 인생이 사라지는 느낌, 아이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내 경우 신체적인 고통보다 그 느낌을 견뎌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래서 셋째를 낳고서는 최대한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붙어 있었다. 일찍부터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자주 보고, 넷플릭스도 열심히 보고, 여행도 다니고(우리 셋째는 백일이 되기 전에 이미 두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난 직후에는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면서 정신적으로도 바쁘게 지냈다.


요즘에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삶이 없어진다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말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주입하는 '육아', 사람들이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그 방식으로 키우다 보면 인생이 더 피곤해지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나를 지켜내면서 나와 아이가 공존할 수 있는 육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직 세명밖에 안 낳아 봤지만 '산후조리원-문화센터-놀이학교-영어유치원'으로 이어지는 육아 없이도 얼마든지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다.  


또한 아주 엄밀히 말하면 나의 삶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삶은 풍성해진다. 아이를 세 명정도 낳아보니 어느 정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귀여운 자태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에게 프로펠러를 장착해주는 것 같다. 아이들을 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 결과 그 아이들로 인해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날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다니다 보니 나의 능력치가 자꾸만 상승하게 되었다.  한자 '사람 인'자와 같이 아이들은 나를 의지하지만 나는 내 삶의 원동력을 아이들로부터 얻음으로써 아이들을 의지하는 셈이다.


직장 복귀 후에도 나의 육아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셋째가 이제 겨우 백 십 며칠을 향해 가고 있으니 밤 수유도 진행하고 있고 한창 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단 무조건 Go다. 무엇보다 첫째, 둘째 때와 달리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이 고생도 짧게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을 때까지 이고, 길어도 3-4년 정도 견디면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나와 손하트를 날리며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실 때 마카롱 사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험은 더 나은 엄마를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 꼭 그렇게 애 셋을 낳아야 속이 시원하겠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