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 Mar 17. 2023

엄마의 승진

애 낳고도 승진하는 여자의 비밀

올해 2월, 나는 세상 그리  어렵다는 파트너 승진을 했다. 드라마에 파트너로 짜잔 반짝반짝하게 나오는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 즉 지분파트너 승진은 아니고 월급파트너 승진이긴 했지만, 로펌에서 승진은 매우 귀하기 때문에 (로펌 변호사은 직급체계가 어쏘와 파트너로 나뉠 뿐이다) 나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매우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경력직 입사로 동년차 변호사들 대비 승진이 뒤쳐진 상황이었기에 승진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작년 초, 임신사실을 알고 딱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승진은 물 건너갔구나'였다. 다른 점은 다 차치하더라고 일한 시간의 양이 사실상 절대적인 평가기준인 대형로펌에서 출산휴가만 쓴다 해도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평가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승진을 원한다 해도 소중한 아가와 맞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임신이 안정기에 들어설 무렵 나는 우리 로펌에서도 빡세기(?)로 소문난 여자 동료변호사에게 조심스레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우리 로펌에 재직하면서 2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나의 임신소식을 접한 그녀는 격렬하게 축하해 주었고, 나의 승진걱정에 미리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다가 3개월만 쉬고 돌아오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다"며 나를 격려했다. 그 말을 듣고 사실상 포기했던 승진에 대한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임산부, 산모, 애엄마이기 전부터 나는 변호사였고, 임신한다 하여 갑자기 승진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너무 당연하게 안될 거라고 단정 짓고 포기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되는대로" 열심히 일했다. "되는대로"라고 말하는 이유는 임신초기에는 입덧도 있었고 후기에는 몸이 무거워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 선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여전히 승진하기에는 부족한 업무량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안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꼭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임신 및 출산 사실이 나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승진을 축하해 주는 고마운 분들에게는 " 셋째가 복덩이였나 봐요",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데 이건 나의 보탬 없는 진심이다. 만약 굳이 승진의 비밀을 찾아본다면 임신사실을 알고도 미리 포기하지 않은 점, 주어진 몸상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임신 및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개인사로 분류하여 임신과 출산을 업무에 일체 지장 없게 할 것을 요구했다면, 요즘은 업무차원에서도 배려를 많이 하는 분위기이다. 거기에 원리를 알 수 없는 하늘의 도움(?) 역시 약간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ㅎ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임신 및 출산과정에서 승진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주변에 어린 여성분들을 보면 임신 및 출산이 본인의 커리어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해서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를 낳고 돌보는 과정에서 일부 시간을 업무에 투입하지 못하고 그만큼 성장이 더딜 수는 있겠지만, 커리어는 1,2년의 단기성과로 승패가 갈리지 않는 장기전이다. 은퇴하지 않는 한 계속 노력하면서 자기 발전을 한다면 내 실력과 경력은 속도에 상관없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체능력에 커리어가 크게 좌우되는 운동선수나 발레리나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와 커리어를 맞바꾸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사실 이런 특수한 경우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결국 운 좋게 애 낳고 승진한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인 것 같다. 승진이든 머든 미리 포기하지만 말라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결과적으로 승진을 하지 못했더라도, 어차피 미리 포기하고 예상한 결과였기 때문에 별다른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누군가 나에게 좀 과도하게 긍정적인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생각해 보면 그 긍정이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일을 벌이게(?) 만들고, 더 많은 노력을 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인생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싶다(물론 그 과정에서 고난을 동반하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 셋 엄마는 오늘도 달린다.




작가의 이전글 셋째 엄마의 출산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