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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Jan 18. 2024

워킹맘 커리어의 방향성

선택과 집중 가능한가요?? 나만 어렵나요??

어제는 나의 변호사 커리어의 시작점부터 연을 이어온 전 직장 상사분을 만나고 왔다. 퇴사 이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근황을 전해드리고, 같이 운동도 하고 만날 때마다 친정을 찾은 것 같은 편한 느낌이 드는 그런 좋은 분이시다. 하지만 그분 역시 본업이 변호사인지라 가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시곤 하는데 나 같은 경우 그 질문들을 한동안 마음에 두고 고민해 보는 편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코멘트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민해 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종종 뵙기는 했지만, 점점 바빠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안쓰러워하시기도, 가끔은 고소해(?)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어제 역시 근황을 물으셔서 여전히 바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대뜸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좋은 성과가 나와야 할 텐데.. 안 나오면 어떡하냐". 사실 변호사의 업역이라는 것이 성과를 딱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소송을 하든 자문을 하든 어쨌든 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성과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라고 돼 여쭈었더니, "그 분야 전문가 하면 딱 니 이름이 나오고, 그런 거지" 라며 에둘러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대형로펌에 있다 보니 주면에 잘 나가는 변호사와 잘 못 나가는(?) 변호사가 제법 한눈에 구분이 되는 걸 느낀다. 연간 수임실적을 정리했을 때 매출액이 어마어마하다든지, 아주 중요한 사건을 승소해서 신문에 난다든지, 굴지의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든지 그런 요소들이 잘 나가는 변호사와 그 이외 다소 평범한 변호사를 구분하는 퍽 명확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내변호사에서 로펌으로 옮길 때 꼭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어야지 하고 옮긴 것은 아니었기에, 적어도 최근까지는 내가 잘 나가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에 파트너 승진을 하고 이런저런 일들에서 나름 의미 있는 역할을 하다 보니, 내가 잘 나가는 변호사님들 부류에 있을지 약간의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고, 은근 간섭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내가 맡은 분쟁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싶고, 자문을 할 때는 자문을 통해 고객이 좋은 결과를 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잘 나가는 변호사들 부류에 이름을 올리고자 24시간도 모자라게 뛰는 변호사들이 주변에 즐비하고, 나는 애셋의 엄마로서 마치 신데렐라처럼 시간이 일정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야 한다.  


아주 객관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잘 나가고 싶고,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면 나는 그들만큼 더 시간을 투입하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 내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남들보다 덜 노력하는데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워킹맘으로서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에도 야근을 하고 들어가서 아이들을 재우지 못했는데, 그다음 날에 미지가 컸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이쯤 되면 워킹맘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바둥바둥 열심히 일해도 오롯이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Second-Best 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애를 키우고 싶다면서, 최고의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게 어쩌면 모순적인 건 아닐까.


아직 40년 남짓한 인생밖에 살지 못했지만, 나의 경우 살면서 성공을 가름하는 열쇠는 단연 '동기 부여'였다. 그것이 형제자매 또는 친구들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었든, 현실의 결핍으로 인한 생존전략으로 인한 것이었든 또는 강한 자존감으로 인한 내적 동기였던, 내가 잘하고자 하는 마음, 잘 해내야 하는 마음, 더 나아가 잘 해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예전에 고시공부를 할 때에도 무조건적으로 공부시간을 다량 확보하는 것보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효율이었다. 똑같은 시간을 투입했지만 몇 차례 떨어지다, 이번에는 떨어지면 그만둔다는 마음을 먹고 공부했을 때 결국 합격했으니 말이다.  말인즉슨,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는, 즉 잘 나가는 변호사가 확률은, 성공에 대한 동기 부여를 내가 얼마나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투입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꾸준히 일할 있는 채찍과 당근을 얼마나 꾸준히 투입할 있을 것인가 말이다.


수년 전에 우연히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당시 우리 회사 사장님과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시고 스카우트되셔서 우리 회사로 오신 사장님은 누가 봐도 날 때부터 스마트 기능을 장착하고 태어나신 것 같은 외형의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막상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뭔가 순박하신 면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어떻게 오늘날 사장의 자리까지 가시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내용이 참 인상 깊었다. 어렸을 때는 본인을 위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셨다고 했다. 내가 잘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서 열심히 사셨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나서는, 내가 잘할 때마다 그 가족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열심히 사셨다고 했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나를 위해 살아야 지하는 동기부여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살 때 비슷 또는 그 이상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사실이.


나는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가족으로 배수진을 친 워킹맘은 그 누구보다 큰 동기부여를 확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워킹대디도 마찬가지이다). 공교롭게 내 경우도 진짜 신기하게도 일을 잘해야 지하는 마음은 셋째를 낳은 뒤 더 커졌다. 딸 둘일 때는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다소 이상적인 목표가 있었다면, 셋째까지 낳고 난 뒤에는 일단 급여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그리고 셋째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현역에 남아있겠다는 보다 현실적인 생존을 위한 목표가 생겼다. 여기에 황혼육아로 하루하루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는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워킹맘의 운명이 좀 비극적이다. 불쌍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상황은 나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할 것이고, 그 동기부여를 나만의 경쟁력으로 삼아 나는 내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 그 높이를 보고 언제 올라가나 하면 절대 엄두도 나지 않지만, 땅을 보고 한 계단 씩 차곡차곡만 올라간다면 산의 높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결국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사실 그래도 괜찮다.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성과를 낼 거고, 머 대단히 잘 나가지 못하면 또 어떤가.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쌓일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노력해 본 뒤에 그 결과를 순응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든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워킹맘 커리어의 방향성은, 항상 "못 먹어도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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