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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Jan 23. 2024

싸우지 않는 결혼생활의 노하우

참고로 저는 극 T입니다.

사실 이제 갓 마흔 문턱에 들어선 내가 결혼생활의 성공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만큼의 내공은 없다. 결혼한 지 이제 겨우 10년 좀 넘었을 뿐이고, 아직도 엄마집 문턱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육아를 친정과 분담하고 있으며, 심지어 혹자는 유니콘과 결혼한 것이 아니냐며 내가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마다 갖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연애했을 때부터 아이를 셋 낳고 사는 지까지도 남편과 크게 싸우지 않고 소소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아직까지도 남편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는 점이다.


어제 주변에서 갓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내게 결혼생활의 노하우를 물어보았다. 나는 웬만한 노하우는 이미 책이나 인터넷에 다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웬만한 노하우는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 있다.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노하우를 마음으로 끌어내리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프로세스가 잘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나도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몇 가지 던져보았다.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은 "그럴 수 있어!"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처음 결혼하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나와도 너무나 다른 남의 모습이다. 나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와는 별개로, 지난 2-30년을 전혀 다른 유전자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낯선 남자. 사실 그 남자가 내가 결혼한 남자다. 이 남자가 낯선 남자로 느껴지는 이유는 나와 "리액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가 "우와 예쁘다~!"라고 반응하는 신상백에, 남편은 "말도 안 되게 비싸네~!"라는 리액션이 나온다. 이런 반응을 들으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기분이 상한다. 남편에게 센스 없다고 면박을 준다. 그러나 그 가방을 바라보기 전, 결혼 전부터, 나를 사랑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진 그 시각에서는 그 리액션 이외의 것이 나올 수 없다. 예쁜 가방을 좋아하는 내가 아닌, 모든 소비는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육아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포용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과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은 육아를 대하는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조그만 잘못을 해도 바로 엄하게 꾸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다. 내 남편과 나의 리액션이 다르다면 나와 남편이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섭리. 그 다름에 대한 나의 리액션은 우리 남편은 "그럴 수 있어!"라고 일단 받아들일 수 있어야 부부싸움의 일촉즉발의 위험을 벗어날 있다(물론 거기서만 멈추면, 아이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에, 반드시 일관된 대응 법칙을 협의하여 정해야 한다).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배우자의 모든 행동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Take Personal"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것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일레로 연애할 때 대비 남편의 연락이 줄어들었다면, 어떤 사람은 "이제 결혼했다고 애정표현을 덜 하는군.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내 감정이 상한다. 실제로는 남편이 일이 더 많아져 여유가 없거나, 아니면 실제로 이제 매일 같이 살고 있으니 일상 중 소소한 연락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 사정이나 생각이 반드시 남편의 사랑이 식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것이 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바라보면 확실히 좋은 점이 있다. 개인적인 분노, 서운함과 같은 감정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일차적으로 (1)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상대방에게 물어볼 수 있고, (2) 화나 짜증을 내지 않고 침착하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3) 나아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다.  


아주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밤에 바빠서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는데, 아침에 남편이 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짜증이 몰려온다. 더 화가 나기 전에 먼저 떠올린다. 나보다 남편은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는 상황을 덜 불편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사람마다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설거지 쪽이 조금 불편하다. 음식물의 잔해가 싱크대에서 잔류하고 있는 그 상황을 좀 못 참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 나라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설거지부터 했겠지만, 남편은 다른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설거지를 차선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선택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남편이 "내가 부탁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를 덜 사랑하거나, 나를 괴롭힐 목적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느라 깜박했거나, 본인도 너무 피곤해서 미루었거나 얼마든지 다른 이유때문일 수 있다.


그럼 나는 "내가 설거지해달라고 했어? 안 했어?"라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침에 애들 식기 설거지 하고 챙겨서 보내느라 조금 바빴네. 어제 설거지가 안되어 있던데 애들 재우느라 많이 힘들었나 봐. 다음에는 너무 늦지 않게 여유 있을 때 설거지를 해야겠어. 여유있을땐 내가 할게요." 물론 이렇게 글로 써놓는 것과 실제 상황은 매우 다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남편이 "머라는 거야, 불편하면 네가 하던가"라는 식으로 나오면 사실 답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평범한 남편이라면 "깜박했네. 미안해"라고 답할 확률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결혼 전 남편과 미래를 상상하며 도란도란 만들어 놓은 "부부십계명"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계명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 생각하며 논의함에 있어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둘이서 함께 나아가는 삶은(거기에 아이들을 셋이나 얹어서 가는 삶은), 기본적으로 맘대로 혼자서 수는 없는 것이고, 동반자와 지속적으로 의견과 협조를 구하고 받아야 하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배우자와의 소통이야 말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없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긍정적인 언어로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것.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나도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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