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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Feb 07. 2024

내 꿈이 소중한 만큼 남편 꿈도 소중해

일 욕심 많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

나는 꿈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다. 누가 내 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일례로 내가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판사가 되라는 이야기였다. 집안의 어르신께서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신림동에 연수원 준비과정이 있으니 그걸 듣고 좋은 성적 받아서 판사가 되라는 덕담을 해 주셨는데, 엄청 열받았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준비 과정에 등록하기 위한 비용을 본인이 내주시겠다는 매우 따뜻한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직 "왜 내가 뭐 할지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는가"라는데 한 동안 꽂혀 있었다. 남이 되라는 판사 되려고 그 긴 기간 고시공부한 것도 아니었고, 나는 다 나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는데 뭔가 침범 당한 기분이었다.


법조계의 판사 선호현상은 결혼 이후 시어머님과의 대화에서도 확인해야만 했다. 당시 나는 국내 굴지의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해외 출장도 잦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들도 많은 게 속상하셨는지 "판사가 되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슬쩍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수년 전에 한번 집안 어르신으로부터 들은 공격(?)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다시금 화가 슬며시 올라왔다. 당시 힘들긴 했지만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기에, 내 일에 대해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사실 판사가 되면 좋은 점도 많을 것 같고, 그리고 판사가 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판사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누군가 이렇게 '남들이 좋다는 게 좋은 거지'라는 덕담의 취지로 "판사 되거라~"라고 이야기하면 불끈불끈 화가 났었다. 이후에는 나이도 들고 이직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고 실제로 어디로 옮기기 쉬운 환경도 아니다 보니 누가 뭐해라 뭐가 돼라 이런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기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 남편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남편도 병원일로 하루하루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고, 셋째를 낳으면서 경제적인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로컬병원으로 옮기거나 또는 개원은 언제 하느냐고 묻는 등의 이야기를 오며 가며 던지는 것 같았다. 당장 우리 부모님도 수술을 많이 해서 피곤해하는 남편을 볼 때면 조심스렇게 로컬 병원으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에둘러 이야기하시곤 한다.


우리 남편은 나보다는 감정적으로 훨씬 성숙한 사람이다.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들으면 한마디 쏘아주거나, 불편한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비해 남편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잘 넘긴다. 실제로 로컬병원에 가면 편하고 좋다더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남편은 "아~ 그런가요!"식으로 잘 넘겼기에 남편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나의 꿈과 남편의 꿈이 충돌할 수도 있는 사건을 겪으면서 내 삶의 있어서의 남편의 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로펌은 일정 기간을 근무하면 유학을 보내준다. 보통 파트너가 되기 전, 어쏘 변호사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복지 혜택 같은 건데 나는 비교적 높은 연차에 어쏘 변호사로 들어와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에, 파트너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신청할 기회가 어찌어찌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도 대학병원에서 일한 기간이 어느 정도 차다 보니 교수 임용의 기회가 다가오게 되었고, 운 좋게(?) 나의 유학 신청과 남편의 교수 임용이 모두 성공한다면 가족이 함께 유학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유학은 당초부터 생각을 안 했었던 터라 고민이 많아졌는데 내 유학을 위해 남편이 남편의 교수 임용이 되지 않기를 바랄 수도, 남편의 교수 임용을 위해 내 유학신청이 탈락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애매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나의 유학보다는 남편의 교수 임용이 더 오래되고 더 근원적인 꿈이었을 수 있다. 남편은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 나처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그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일해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렸을 때 꿈도 노벨상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드라마 닥터 슬럼프를 통해서 본 대학병원 펠로우의 삶은 처참했다. 하루종일 환자를 보고, 자료를 정리하고 논문을 쓰면서도 교수님들 눈치를 한없이 보던 여자 주인공은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드라마니까 다소 과장이 있다고 해도, 현실에서도 편한 자리가 아님은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긴 시간을 버텨온 데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


어렸을 때는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배우지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꿈은 타협의 대상이 되어간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아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와 식욕이 넘치는 세 딸을 위한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난 내 꿈을 찾아야겠어"라고 말했다면 철딱서니 없는 가장으로 등짝 스매시를 맞았을 것만 같다. 엄마의 경우도 아이들을 돌보기 바빠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내가 꿈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내가 가진 꿈이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 남편의 꿈도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대신 이루어줄 수는 없어도 지켜주고는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굳이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짐을 남편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만약 남편의 진로나 거취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한다면 누군가 무심코 나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해서 내 기분이 상했던 그 상황에 남편을 밀어 넣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타협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러 경우의 수가 얽혀있기 때문에 미리 답을 내려고 조급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 남편은 자신의 꿈을 찾아 임용의 기회를 열심히 쫓았으면 좋겠고, 나도 기회가 된다면 유학의 기회를 꼭 잡고 싶다. 뭐 내 맘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 미리 걱정하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우리 남편이 개업을 하거나 로컬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등의 섣부른 조언을 한다면 나는 머라고 대답해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생계에 지장이 없는 이상, 내 꿈이 소중한 만큼 남편의 꿈도 소중한 것이고,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남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맞다.   


21세기 맞벌이 부부의 필수조건이 가사의 분담이라면, 맞벌이 부부가 가지는 각각의 커리어를 위한 노력 역시 분담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약간은 타협의 기지를 발휘해야 할 수 있는데, 타협의 전제는 나의 꿈만큼 남편의 꿈도 소중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남편이 사회활동을 하고 아내가 가사를 전담하는 분업부부와 차별화되는 맞벌이 협업 부부가 잘 해낼 수 있는 '역지사지'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여기서 우리 남편이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교수의 꿈은 오직 남편의 꿈이고, 나는 그것이 남편이 원하는 바이기에 응원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언젠가 그 꿈을 넘어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면 나는 남편이 또 그 꿈을 이루는 것도 열심히 응원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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