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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Feb 05. 2024

마당냥이 두리는 집이 두 채

 물그릇이 꽁꽁 얼었다. 따뜻한 물로 갈아준 지 몇 시간 만에. 남부지방에서 보기 드문 강추위다. 바람소리가 꽉 닫힌 창호를 뚫고 귓속을 파고든다. 고양이들이 걱정이다. 일찌감치 츄르 올린 밥을 대령하였더니 마당냥이 두리는 식사를 끝내고 밤마실을 갔나 보다. 두리의 남친, 두랑이의 발걸음은 종잡을 수 없다. 하루에 두세 번을 들락거리다가도, 어떤 때는 며칠씩 코빼기를 볼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녀석을 위해 모락모락 김 나는 밥은 아니지만 언제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밥을 준비해 둔다.


 두리와 앙숙인 이웃집 두서도 제집보다 밥맛이 좋은지 수시로 들락거린다. 게다가 현지냥 맛집이라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겨울 들어서 검은색 고양이와 치즈냥이, 흰 고양이 한 마리가 가끔 마당을 기웃거린다. 해질 무렵, 두리 집 앞과 축대 위 곳곳에 계란빵 다섯 개와 저녁밥 세 그릇을 놓아두었다. 완전 고봉밥으로다가. 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길고양이들도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추위를 이겨 내는 데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우리 집은 처마가 없다. 길고양이들이 비나 바람을 피할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고양이들과 만난 첫해 겨울, 보온이 되는 상자 집과 조립식 비닐하우스를 주문하여 설치해 두었지만, 길고양이들은 바깥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도통 이용하지 않았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고양이 집은 흉물스럽게 망가져 결국 철거했다.     

 

 고양이들은 다행히도 작년 겨울 추위와 태풍을 잘 견뎌냈다. 근처 하우스나 아랫집 농막을 은신처로 삼고 있었다. 12월이 되자 고양이 집을 다시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추위에 떨며 밥 먹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덩치 작은 고양이들이 날려 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바람이 기세등등한 동네다. 우리 집은 위쪽이라 더하다. 밥 먹을 때 만이라도 편히 먹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이웃에서 쓸모없어진 개집을 주워다 놓았다. 말이 주워다 놓았다는 거지 실상 장정 둘이 들어도 끙끙댈 만큼의 무게다. 고양이들을 위해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우리 집에 갖다 놓자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은 개 냄새가 나서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며 지청구를 하면서도 개집을 운반해서 씻어 말리고 수리까지 해주었다. 옳거니, 이제 그것을 활용할 때가 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선 나를 보고 ‘당신 혼자 뭘 하겠냐며’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할 수 있다며 큰소리쳤지만 개집을 옮기려고 보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의 도움으로 볕 바른 자리로 옮겨놓고 창고에서 주섬주섬 천막을 들고 나왔다.


 개집 위로 천막을 쳐서 비바람을 막아주고 싶었다.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꼴이 안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머릿속으로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막상 설치하려니 쉽지 않았다. 옮기는 것만 해주겠다던 남편이 한심하게 쳐다봤다. 창고로 들어가더니 망치, 노끈, 쇠꼬챙이 같은 연장을 챙겨 나왔다. 고양이들이 들어가지도 않을 텐데 쓸데없는 짓 한다며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해주는 츤데레 남편이 고맙다. 바람에 꿈쩍 않게 단단히 고정하여 천막을 두르고 보니 한결 아늑해 보였다. 개집 안에 두툼하게 담요를 두 겹으로 깔고 집 앞에도 헌 옷을 깔아 두었다.


 마침 그날 저녁 두랑이가 왔다. 밥과 간식을 챙겨 집안에 넣어 주니 두랑은 냉큼 들어가 간식을 먹었다. 두리는 머뭇거리다 얼른 들어가 간식만 먹고 나왔다.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하려고 밥을 집안에 두었더니 두랑은 거리낌없이 드나들었고, 두리는 밥을 먹고 나와선 바람은 막아주고 햇살은 따뜻한 천막 앞쪽에서 글루밍도 하고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냈다. 천막은 신의 한 수였다.


사이좋게 밥 먹는 두랑과 두리



천막 앞은 두리, 밥먹는 두서, 남은 밥 기다리는 까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반려견 두강의 거처를 옮겼다. 뒷마당에서 생활하던 녀석을 다시 주차장 안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마당에 있는 두강의 집은 보온 패널로 만든 것이기는 하나 아무래도 한겨울을 나기에는 무리였다. 두강이 집을 비운 며칠 뒤부터다. 아침마다 두리가 두강이 집 위에 앉아 다용도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 달라고 기다리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편의 목격담을 듣기 전까지는.


 두강이와 아침 산책을 나가기 전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던 남편이 두강이 집 쪽으로 다가가자 두리가 개집 안에서 기지개를 쭈욱 켜며 나오더란다. 하하,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 한다더니. 신기했다. 두강이 냄새가 배어 있는 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불처럼 덮고 자면 좋을 것 같아 포근한 담요를 하나 더 넣어 주었다. 원래부터 제집이었던 것처럼 두리가 편안히 지내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한걱정 덜었다. 우리는 두강이에게 왕 뼈다귀 개껌 하나로 전세금을 퉁쳤다. 올 겨울 두리가 제일 부자다. 두리는 집이 두 채다.  

두강이 집 지붕위서 ㄷ다용도실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두리



    

아무것도 아닌 삶은 없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관심밖에서 소외된 묘생을 사는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온 힘을 다해 산다.


- 고양이 사진작가 이용한 저서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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