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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l 01. 2024

고산병엔 비아그라?

얼렁뚱땅 남미 여행

전용버스를 타고 우루밤바강을 따라 오얀따이땀보로 이동 중이었다. 그날의 일정은 잉카의 여관이라 불리는 오얀따이땀보 유적과 계단식 밭 모라이, 수수께끼 거석을 둘러보고 열차를 이용하여 마추픽추의 길목 아구아 깔리엔떼스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페루는 안데스 산지에 있는 나라로 기본이 해발 고도 3,000m 이상이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을 많이 마시고 걸음을 천천히 해야 한다고 들었다. 아침부터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구토 증세가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버스는 곡예를 하듯 가파른 산길을 뒤뚱뒤뚱 힘겹게 올랐다. 출발 전 고산병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뒷좌석이라 그런지 멀미까지 겹쳤다. 전용버스는 며칠 동안 타다 보니 거의 지정석이 돼 버렸다. 우리 부부는 버스 기사가 캐리어 정리하는 걸 도와주고 늦게서야 타면 거의 맨 뒷좌석 차지였다. 양보의 미덕 따윈 서랍에 넣어 두고 올 것 그랬다고 후회할 즈음 보기에 딱했던지 앞 뒤 좌석을 번갈아 가면서 앉도록 하라고 길벗이 나섰다.   

   

여행 중 본 많은 페루 사람들은 하루 종일 코카잎을 씹고 있었다. 혹시 코카인의 그 코카냐고? 그렇다. 안데스 산지의 여러 나라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코카잎을 의약품이나 기호식품, 차로 이용해 왔다. 고산병과 두통 완화에 큰 효과가 있는 데다가 마취제가 없던 시대에는 마취제로 쓰이기도 했으며, 현대에도 차나 술 등으로 이용되며 껌을 씹듯이 잎을 씹는다. 그래서 힘든 일을 하는 육체노동자들과 가난한 원주민 사이에는 꼭 필요한 생필품이라 했다.


 코카잎에서 마약성분을 따로 추출한 것을 코카인이라 하는데 걱정은 마시라. 잎 몇 장으로 중독이 되진 않는다. 식당, 카페, 구멍가게에 코카잎으로 만든 사탕과 껌을 판다. 낮에 현지 가이드에게 받은 코카잎을 버스 타기 전부터 질겅질겅 씹어 댔지만 고산병이 낫기는커녕 아구만 아팠다.      


버스 차창에 머리를 박으며 죽을상을 하고 꼬꾸라져 있는데 모두 모라이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모라이는 해발 3,400m 석회암 고원에 위치한 엄청난 규모의 원형 계단식 경작지다.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 마을에도 계단식 논이나 밭이 있어 짐작이 가긴 했지만 그 규모가 대단하다고 해서 출발 전만 해도 기대에 찼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차에 남았다. 관광은 고사하고 차창 밖으로 머리를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지독한 두통과 씨름하는 와중에도 버스 안을 둘러보니 나 말고도 두엇이 더 있었다. 타인의 슬픔이 내게 위로가 된다더니 비참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남미는 고도가 높은 지역이 많다. 여행도 못하고 내내 이런 꼴로 있을까 봐 억울함이 앞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산병에 특효라고 소문난 비아그라라도 준비해 올 걸 그랬다.     

계단식 밭 모라이


오얀따이담보



오얀따이땀보에서 열차로 갈아타니 두통 증세가 조금 가라앉았다. 잉카레일이라는 열차는 마추픽추의 길목인 아구아칼리엔테스를 향해 달렸다.  기차는 좁은 협곡을 따라 이어졌고 기차 안에서 내려다보니 철로의 폭도 좁게 느껴져 아슬아슬했다. 표준 궤간(철도레일의 두 쇠줄 사이의 너비)이 1,435밀리미터인데 마추픽추로 가는 구간은  914 밀리미터라고 하니 그만큼 급하고 험한 구간이라는 뜻이다.     

 

차창 밖으로 선로를 따라 걷는 여행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더위와 경사때문에 몹시 힘들어 보였다. 왕복티켓 가격이 우리 돈으로 약 15만 원 정도라 했다. 기차 요금이 워낙 사악하기 때문에 3시간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숨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호텔에는 여러 대의 이동식 산소호흡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시도해 보았다. 기분 탓인지 두통이 한결 나아졌다. 이곳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가져간 홍삼과 이것저것을 챙겨 먹고 휴식을 취하니 다음 날 신기하게 두통이 가라앉았다.


남편은 아직도 TV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페루만 나오며 ‘너 저기서 고산병 어쩌고'  하며 깐죽거린다. 구타유발자여! 주먹의 용도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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