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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n 13. 2024

오디, 난 네게 반했어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뽕나무

집 뒤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맑게 들리고 나무들의 녹음이 점점 짙어져 가는 월의 아침, 이웃에 사는 이가 커피를 마시러 왔다. 한참이나 수다를 떨고 가면서 “언니, 집 옆에 뽕나무 있는 거 알아요? 오디 익으면 따 먹어요.”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디가 뽕나무의 열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자세히 보거나 먹어본 적도,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며칠 뒤 남편의 팔촌계 모임이 있었다. 우리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와서 차와 후식을 먹었다. 한참 담소를 나누는 데 일행 중 두 명이 보이지 않아 잠시 바람을 쐬러 갔나 했더니 종지 가득 오디를 따 왔다. 손위 동서들이 손에 보랏빛 물을 들이며 오디를 먹는 것을 보고서도 그 맛이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동서들은 어릴 적 오디를 따 먹던 추억을 들먹이며 연신 오디가 어디에 좋고 어떤 증세에 효과가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주차장 앞에 있다는 오디나무를 보러 갔다. 큰 나무가 두 그루나 있었다. 포도송이의 축소판 같은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다. 다 익으면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이지만 대부분 빨간색을 띠고 있었다. 찔레꽃을 보러 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오디가 열리지 않아 뽕나무인 줄 몰랐다. 이사 온 지 삼 년이 되도록 어떻게 코 앞에 있는 걸 몰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남편은 알고 있었지만 예사로 생각했단다.     


 나무에 빨갛게 달린 오디를 보니 어디에 얼마나 좋은지 궁금증이 일었다. 오디는 블루베리보다 안토시아닌이 약 1.5배 많아 항산화작용이 탁월하며 고혈압과 고지혈증 예방, 당뇨병과 탈모예방, 빈혈, 신경 안정에도 효능이 뛰어나다고 적혀있다. 세상에, 이쯤 되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게다가 갱년기 증상 완화와 저칼로리 식품이라 다이어트에도 좋다니 내게는 금상첨화다.   

  

오디가 익기를 기다려 이틀 후 내려가 보니 맙소사, 볕이 좋아서인지 오디가 까맣게 익어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졌다. 아까워서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머리 위로 연방 오디가 톡톡 떨어졌다. 나뭇가지에 달린 새까맣고 윤이 반들반들한 실한 놈으로 골라 입 속에 넣었다. 잘 익어 그런지 신맛은 전혀 없고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라 입안에 향이 남으면서 은근하게 당기는 맛이었다. 나무가 비탈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키가 커서 길 위로 뻗은 가지에 달린 것들만 땄다. 한 나무는 병이 들었는지 바싹 마른 열매들이 많았다.     



뽕나무는 우리 집 근처에 있지만 소유자가 따로 있다. 땅 주인이 투자 목적으로 오래전 사둔 땅에 길이 없어 지금은 방치된 채로 있다. 그러다 보니 나무에 비료나 약을 치기는커녕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풀과 나뭇잎이 쌓여 썩고 거름이 되어 자연스럽게 유기농 오디가 되었다. 농장에서 재배하는 뽕나무는 열매나 잎을 따기 쉽게 하려고 키가 크지 않다고 한다.   

   

오디 따는 것에 재미를 붙여 며칠간 날마다  익은 것을 따 왔다. 견뽕생심(정확하게는 견오디생심이지만) 그냥 두면 온통 바닥에 떨어져 썩을 판이니 아까운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잘 익은 것들은 손만 대면 바닥에 톡 떨어져 버리고 옆에 있는 바싹 마른 열매의 가루가 섞이기 일쑤였다. 정작 고난도의 작업은 꼭지를 따는 일이다. 깨끗이 헹군 다음에 2밀리 정도 되는 꼭지를 일일이 따는 일은 목과 어깨도 아프고 퍽이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작업을 마무리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오디는 제철에는 생과육 그대로 먹거나 주스로 먹지만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청으로 만들거나 오디주나 잼으로 만든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생으로 먹는 것이다. 마침 우리는 아침 식사에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는다. 요구르트 위에 호두, 아몬드, 캐슈너트 등의 견과류와 꿀 한 숟갈, 그리고 냉동 블루베리를 얹는다. 블루베리 대신 오디를 넣어 먹어 봤더니 산딸기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있는 데다 신맛이 없어 좋다. 게다가 영양소도 더 풍부하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곤란하다. 몸이 찬 사람은 설사를 할 수도 있다니 산딸기처럼 한 대접씩 먹는 일은 참아야겠다. 당장 먹을 것만 두고 지퍼백에 소분하여 몇 개를 얼려 두니 그게 뮈라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누가, 언제 심어 둔 것인지는(현재의 땅 주인은 아님) 모르나 나무를 심은 분께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스스로 가꾸어 이토록 많은 열매를 내어준 뽕나무에게도, 뽕나무가 굳건히 자랄 수 있도록 해준 자연의 힘과 대지의 여신에게도 감사드린다. 부디 내년에도 이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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