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Aug 05. 2024

요즘 우리집 구호는 오이 111

불 없이 만드는 오이요리

물 폭탄을 쏟아붓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언제 그런 일이 있기나 했나 할 정도로 폭염과 관련된 안전 안내 문자가 연일 오고 있다.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디뎌도 이글거리는 햇빛이 널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겠어 하고 작정한 듯 달려든다.


이런 날씨에 야외에서 혹은 변변한 냉방장치 하나 없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늘어져 있는 게 미안하다. 하지만 더운 건 어쩔 수 없다.

책 한 권을 들고 식탁 의자에 앉으니 창밖으로 텃밭이 보인다. 오이, 고추, 상추, 부추, 토마토가 햇볕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저러다가도 새벽이슬 맞으면 생기를 되찾아 아침이면 싱싱하고 실한 놈들을 품에 안겨 준다.      


오늘도 어김없다. 반려견 두강과 산책을 끝내고 마당으로 나간 옆지기는 아직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오이, 호박, 토마토를 안겨준다. 텃밭에서 첫 수확물을 얻을 때의 기쁨은 아이가 첫발을 내디뎠을 때처럼 뿌듯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작물의 양이 넘쳐나면 기쁨보다 ‘아’하는 탄식 같은 탄성이 터진다.


올봄, 모종을 심을 시기였다. 작년엔 상추를 너무 많이 심어 처치 곤란이었는데, 올해는 주 종목을 뭘로 하지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오이라고 했다. 가지, 호박은 불이 가야 하는 식재료지만 오이는 생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깍두기, 피클, 무침은 물론 아침 샐러드에 넣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고, 쌈장에 콕 찍어 먹으면 더위에 지친 일상을 달래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옆지기는 오이 모종 열 포기를 심었다. 과했다. 많이 심어달랬다고 그렇게까지 할 건 뭐람. 심어 놓고 자식 돌보듯 알뜰살뜰 가꾼다. 두어 개씩 달리던 오이는 아침저녁으로 분신을 내보냈다. 또야, 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눔을 해도 냉장고 야채칸에는 늘 오이 몇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이 111’ 요즘 우리 집 구호다.

1인당 1일 오이 1개를 의무적으로 먹어치워야 한다. 아무리 오이를 애정한다기로서니 매번 같은 요리법(요리랄 것도 없지만)은 그나마 오이에게 남아 있는 정도 떨어질 판이다. 식탁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오이를 살려야 한다.     


여름이면 땀을 많이 흘리니 몸을 보하기 위해 삼계탕 같은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그건 남이 해줄 때나 기껍다. 푹푹 찌는 날씨에 불 앞에서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가족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다. 못 할 노릇이다. 오이 일병도 구하고 불과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되는 오이 요리법을 찾아봤다.

오이깍두기, 오이냉국, 오이소박이, 오이피클, 오이지, 오이 초무침, 오이 액젓 무침, 오이 들깻가루 무침, 닭가슴살 오이 탕탕이, 오이 맛살 냉채, 오이샐러드, 오이 토스트.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다 해 봤다.


그중 가성비가 높은 것은 오이깍두기와 오이 피클이다. 오이깍두기는 풀을 쑬 필요도 없고 오이소박이처럼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아 밑반찬으로 두고 먹기 제격이다. 갓 담갔을 때의 아삭 거림도 좋지만 적당히 익었을 때의 새콤한 맛은 입맛을 돌게 한다. 오이 피클은 일 년 내내 보관해 두고 파스타나 피자와 함께 먹을 수 있다. 피자 시켰을 때 따라오는 감질나는 양에 연연할 필요 없이, 눈치 보지 않고 한 번에 두 개씩 먹을 수 있다.


가심비가 좋은 것으로는 오이 들깻가루 무침이다. 아, 물론 가성비와 가심비는 전적으로 내 기준이다. 오이를 얇게 썰어 절이고 물기를 짜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다른 무침류에 비해 이삼일은 끄떡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 고급지다. 오이와 토마토, 닭가슴살로 만든 샐러드는 훌륭한 다이어트용 음식이 되고, 오이 토스트는 좋아하는 음료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조리법과 만드는 영상이 넘쳐난다. 오늘은 번거롭게 찾아보는 수고를 덜기 위해 불 없이 할 수 있는 오이 들깻가루 무침과 오이 맛살 냉채, 그리고 불을 쓰면 반칙이지만 아주 잠깐(2분) 사용하는 식감 좋은 무침을 소개한다.

텃밭에서 자라는 오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
오이깍두기, 오이들깻가루무침, 오이피클, 오이 맛살냉채


오이 들깻가루 무침

재료: 오이 2개, 소금 1/3T, 들기름 1T, 들깻가루 2T, 통깨 1/3T

1. 오이를 씻어 얇게 썬 후 소금 1/3T를 넣고 20분 재운다.

2. 면포 또는 손아귀 힘을 이용하여 물기를 제거한다.

3. 볼에 담고 구운 소금 1/6T, 들기름 1T 넣고 가볍게 섞은 후 분량의 들깻가루와 통깨를 넣어 무친다.

   (들깻가루와 통깨는 가감해도 좋다.)

* 레시피: 1분 요리왕 통키     


오이 맛살 냉채

재료: 오이 1개, 맛살 (또는 크래미) 5개, 양파 1/4개,

소스: 연겨자 1/2T, 홀그레인 머스터드 1/2T (없으면 연겨자 조금 더), 식초 2T, 설탕 1T,  매실액 1/2T,

        다진 마늘 1/2T, 소금 1/2t, 통깨 1/2T

1. 오이는 껍질 벗겨 채칼로 밀고 (씨 부분 제외), 크래미를 적당한 크기로 찢는다.

2. 양파를 얇게 채 썰어 찬물에 담가 둔다.

3. 위 분량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4. 체에 밭쳐 물기를 뺀 양파, 오이, 크래미를 볼에 담고 소스를 부어 섞는다.

* 레시피: 소소황     


오독오독 오이무침 

재료: 오이 3개, 천일염, 통깨 2T, 진간장 1T, 설탕 2t, 들기름 1t,

1. 오이를 얇게 썰어 (채칼 사용 무방) 소금을 뿌리고 섞어 준 후 10분간 고이 재운다.

2. 물에 소금 1/2술 넣고 끓으면 재운 오이를 깨워 물기를 대충 짠 후 넣었다 바로 건진다.

3. 찬물에 살짝 헹군 오이의 물기를 꽉 짠 후 간장, 설탕, 들기름, 통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 레시피: 김소형채널 H

(T는 큰 술, t는 작은 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