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제도는 에콰도르 연안에 있는 다양한 섬들을 가리키는 말로 해양 생명체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해양 생물을 보유하고 있어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언젠가 갈라파고스의 거북에 관한 기사를 읽고 그곳에 가서 거북의 알을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여행 일정에 갈라파고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까지 가기에는 어마무시한 경비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같이 가난한(?) 여행객을 위해 리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섬 보트투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예스타섬은 페루의 국립공원으로 해양 동물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새들과 물개와 바다사자가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길을 나섰다.
갈라파고스는 살아있는 자연의 연구실입니다. 이곳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생명체의 거대한 실험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 찰스 다윈
파라카스 선착장에서 쾌속선을 타고 태평양의 흰 파도를 가르며 10여분 넘게 달리자 건너편 모래 언덕에 선인장같이 생긴 형체가 보였다. 폭 70m, 길이 189m에 깊이 1m의 스페인 정복자들이 촛대모양으로 생각해서 '칸델라브라'라고 이름 붙였다는 신비로운 그림이다. 기원전 200년경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누가, 왜 만들었는지 모른다. 모래에 새겨진 그림이 어떻게 훼손되지 않고 지금껏 보존되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라 그림이 바위에 새겨진 것처럼 그대로 굳어졌다고 한다. 분명 인간이 했지만 자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칸델라브라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뜰 수 없어 인상을 찌푸린 여행객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보트가 섬 가까이 다가가자 바위섬에 보이는 검고 흰 점들의 실체가 어마어마한 새 떼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마우지, 검은 머리 물떼새, 가만있자 저건 페... 펭귄? 남극에 있어야 할 펭귄이 왜 여기? 남극에서 적도로 흐르는 훔볼트 해류를 따라 페루와 칠레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훔볼트 펭귄이라고 했다. 화면 속에서나 동물원에서만 보던 펭귄을 떼로 보는 일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새떼들은 집단별로 중요한 일을 결정이라도 하는 듯 인간 따위야 오든 말든 제각기의 소리를 내며 의논에 열심이었다. 새들이 앉은 바위를 자세히 보니 흰색에다 군데군데 고드름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새똥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구아노라는 천연비료로 두께가 자그마치 20m 이상으로 16세기 잉카인들이 채취를 시작한 이래 19세기부터는 페루 정부에서 관리하며 채취한다고 했다. 지금은 7년에 한 번씩 6개월에 걸쳐 약 6000t만을 채취하는데 질 좋은 인산질 비료여서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보니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를 ‘구아노 전쟁’이라 부른단다.
막대한 배설물을 제공하는 유공자는 가마우지다. 한 마리가 하루 1㎏의 물고기를 먹고 50g이나 되는 똥을 싼다고 하니 이건 뭐 똥 잘 싼다고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이다. 풍부한 새똥으로 해초가 무성하고 이를 먹기 위해 플랑크톤과 작은 새우들이 몰려들고, 이것들을 먹기 위해 물고기들이 오고 새들은 물고기를 먹고 똥을 싸고, 그 똥을 비료로 인간은 곡식을 재배한다. 자연과 생명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생태계의 선순환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경이롭기만 했다.
검은 머리 가마우지와 구아노 채취 시설
오후에는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 경비행기를 탔다. 누가 겁쟁이 아니랄까 봐 솔직히 타기 전에는 조금 무섭기도 하고 멀미도 걱정했지만 막상 하늘 위를 날다 보니 언제 그런 생각을 했나 싶었다.
나스카 라인은 약 2,000년 전 나스카인들이 남긴 유적으로 추정되는 페루 남부 사막에 그려진 고대의 신비로운 그림들로,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봐야만 형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다. 날개 하나의 너비가 100m를 넘는 새, 길게 뻗은 꼬리를 가진 도마뱀, 원숭이, 방사형의 가지를 활짝 편 나무, 거미, 개, 등을 비롯해 기하학적인 도형까지 수 백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수 백 미터가 넘어 땅 위에서는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조차 힘들 텐데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직선과 곡선을 표현하고 뚜렷하게 형체를 완성했는지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그림들은 다소 흐릿해서 설명이 없으면 무엇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제대로 건진 게 없었다. 자리 탓이라고 해 두자.
페루 남부지역은 건조하고 거의 비가 오지 않아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왜, 어떻게, 이 엄청난 그림들을 남겼을까 하는 의문은 인류에게 숙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