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카마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 도착했다.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 중의 하나다. 연간 강우량이 0.01㎝ 이하이며, 일부 지역에는 40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한다. 와카치나 마을은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고 오아시스 주변에 주로 호스텔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 큰 개들이 어디서 왔냐며 시큰둥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카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사막 일몰 투어에 나섰다.머릿수건, 선글라스,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는데도 감춰지지 않는 나의 (안)미모!!
와카치나 마을에서 열릴 축제의 공연 연습을 하는 사람들
와카치나의 오아시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사막의 해지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부드러운 모래언덕 너머로 하늘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화면 속 풍경은 참으로 매혹적이라 죽긴 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다. 기대감에 부풀어 4륜구동 버기카를 타고 드디어 사막으로 갔다. 운전기사는 모래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묘기를 부리듯 짓궂게 달렸다. 사막의 제트 보트가 따로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사람은 환호를,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나는 절레절레 쪽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보드 하나씩을 받아 들고 모래언덕을 올랐다. 나는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샌드보딩은 안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무서웠다. 어릴 적부터 친구가 그네를 조금만 세게 밀어도 ‘살살’이라고 고함지르던 나다. 모든 운동과 레포츠를 싫어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갈 때 치른 체력장도 겨우 합격했다. 대학의 교양 배구마저도 재시험 끝에 통과한 난데 굳이 돈 들여 무서움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흑역사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다. 카프리섬에서 정상으로 가기 위해 1인 체어리프트를 타야 했다. 몰랐다. 케이블카는 용서가 되지만 뚫려 있는 리프트나 곤돌라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모험이다. 알고는 못할 일이다. 카프리섬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경솔한 혓바닥을 혼내주고 싶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여기 남아 기다릴까 망설이는 내게 ‘눈 깜아. 꼭 깜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탈리아 직원은 나 같은 사람 여럿 겪어본 모양인지 서투른 한국말로 나를 달랬다. 그곳까지 가서 한국인이 겁쟁이라는 오명을 남겨 둘 순 없었다. 15분 동안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긴커녕 두 눈을 꼭 감은 채 양팔에 어찌나 힘을 주었던지 근육이 뭉칠 지경이었다. 이런 소심쟁이에게 샌드보딩이 가당키나 한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 둘 보드를 들고 모래언덕 위로 이동하고 있었다. 최대한 줄 뒤로 가서 섰다. 어르신들이 타진 않을 것 같아 눈치 봐서 나도 슬쩍 빠져야지 하는 얄팍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웬걸, 그분들은 벌써 신나게 모래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를 어째. 나만 남았다. 현지 가이드가 눈짓으로 독촉했다. 엉거주춤 한 발을 뒤로 뺀 채 망설였다. 이번엔 좀 더 강한 눈빛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손짓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나. 기껏해야 타박상이지. 칠십 대도 거뜬히 하는 것을 까짓 거 해보지 뭐! 자빠지면 쪽 팔리기 밖에 더하겠어. 보드를 꼭 잡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 느낌 뭐지? 무섭긴커녕 재밌다 재밌어.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더 높고 긴 코스로 계속해서 몇 번을 탔는지 모르겠다. 먼저 시작했으면 한 번 더 탈 수 있었을 텐데. 쩝쩝. 그 뒤부터 미리 겁먹고 피하는 일은 확실히 줄었다. 실전이 이래서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보딩을 마치고 나지막한 모래언덕으로 올라갔다. 사막의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낮 동안 집어삼킬 듯 타오르던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는 순간, 여인의 둔부같이 부드러운 곡선의 황금빛 모래언덕 너머로 태양이 빛의 향연을 벌였다. 붉은색, 보라색, 주황색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수채화 같은 풍경은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제대로 표현해 내기 어려웠다.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지만 내겐 일몰이 있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날 새로운 경험의 대가는 며칠 동안 씻고 털어도 어디선가 끝없이 나오는 모래 알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