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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Jul 08. 2024

잉카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얼렁뚱땅 남미 여행

아는 사람은 알랑가? 디스코 붐이 한창이던 대학 시절 유행했던 노래 중 독일의 6인조 팝 그룹 칭기즈칸이 부른 마추픽추란 노래가 있었다. 그 당시 무지한 내게 마추픽추는 잉카의 옛 유적지보다는 신나는 팝 음악 중 하나로 기억된다. 20대 초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마추픽추를 드디어 직접 볼 기회가 왔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 마을에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버스는 좁고 험한 계곡을 끼고 30분을 달려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새벽 6시에 도착한 매표소는 비교적 한산했다. 영민한 우리 길벗은 우리의 아침잠과 바꾼 대가로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추픽추의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처음엔 마추픽추의 정경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안개에 뒤덮인 계곡은 신비롭고 아름다워 그것만으로 벅찼다.


사실 우리 일행이 일찍 길을 나선 까닭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마추픽추의 맞은편 봉우리인 와이나픽추를 오르기 위해서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인 데다 하루 입산 가능 인원이 400명으로 제한되어 있고, 13시를 전후해 입산을 마감, 16시 전에 하산해야 하므로 서두를 수밖에 없다.    

  


마추픽추(Machu Picchu)는 남미 원주민 언어로 ‘늙은 봉우리’란 뜻이고 마추픽추 북쪽에 보이는 험한 산봉우리가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로 젊은 봉우리’란 뜻이다. 해발 2,700m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2시간 정도의 트레킹을 해야 하는 데 길이 꽤 험하다고 했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오른 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와이나픽추를 포기했다. 또 빌빌대는 너 때문이냐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 이번엔 나 때문이 아니었다.


남편의 눈에 이상 신호가 왔다. 남편은 가끔 피곤하면 눈 안쪽에 염증이 생겨 고생을 했고, 그럴 때면 의사가 직접 망막 안쪽으로 주사를 놓는다. 한번 발병하면 낫기까지 2주 이상 걸리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곳까지 가서 와이나픽추를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나까지 겪었다.

    

일행이 와이나픽추를 오르는 시간에 우리는 마추픽추의 유적지를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자욱한 안개에 뒤덮였던 고대 도시는 30분쯤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쨍한 날씨가 되어 우리의 발길을 고대 잉카인의 삶 속으로 이끌었다. 마추픽추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영국 BBC선정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여행지 10위 안에 꼽히는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이런 곳을 다녀온 내가 새삼 대견스럽다.)


해발 약 2437m에 위치한 고산도시 마추픽추는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고 해서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400년대 후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고고학자들은 파차쿠티 황제가 군사원정 도중 마추픽추를 황실 휴식처 겸 긴급 대피소 등의 목적으로 지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다. 대략 75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6세기 초반 천연두가 확산하고 잉카 제국이 쇠퇴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잊힌 것이다.  

    

마추픽추는 중앙의 수로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이 서로 다른 쓰임새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남쪽은 돌로 쌓아 올린 수백 개의 계단식 밭들로 이루어진 농업지역이다. 계단식 밭에서는 옥수수와 감자, 코카 잎을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고, 북쪽은 광장과 주거지, 태양과 달의 신전, 종교 시설, 해시계 등이 배치된 도시지역이다.


유적지를 돌아보면 곳곳에서 수로를 볼 수 있다. 잉카인들은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돌을 이용해 수로를 만들었고 식수와 농사짓는데 쓸 물을 나누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고 하니 잉카인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마추픽추 유적지에서 놀라운 점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신전이나 다양한 건축물을 완성했는데 수레를 쓸 수도 없는 곳에서 그 많은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옮겼을까? 금속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렇게 반듯하게 오차 없이 돌을 자르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죽하면 외계인이 레이저로 잘랐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고 한다.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아보는 해시계


수로


아구아스칼리엔테스 마을



마지막으로 마추픽추에서 본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매표소 앞으로 나오니 사람들로 북적이던 터에 잠자는 개들이 보였다. 무려 열한 마리, 그것도 모두 큰 개들이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 왔다 갔다 하는 수많은 관광객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잠자는 개들이나 목줄도 하지 않은 덩치 큰 개들이 자유롭게 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놀라웠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누군가의 신고로 벌써 잡혀 갔을 텐데 싶으니 씁쓸했다. 개와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공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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