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known Apr 29. 2020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07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지도 교수의 냄새가 느껴진 거야. 

저녁이 되면 그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 3km 떨어진, 조금 먼 까페로 향한다. 가서 실제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가서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단 가면 무엇이라도 조금은 하게 되니까. 다만 오늘은 오는 길에 평정심을 약간 잃어, 짧게나마 글을 먼저 쓴 뒤에야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창문을 열어 두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꽉 막힌 밀폐 공간에 오래 있으면 약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좋지 않거나, 너무 시끄럽거나 하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지 않다면 그는 늘 조금이라도 창문을 열어 두었다. 겨울의 고등학교, 히터로 인해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에 꼭 복도로 나가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었다. 그런 찬 공기마저 막혀 있는 답답함 보다는 좋아했다. 물론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밀폐된 공간의 창문을 여는 것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오늘 그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창문을 반쯤 열었다. 이내 휴대폰에 돌린 잠깐의 사이에 창문이 탁 하고 닫힌다. 내 자리 바로 옆에 있는 창문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닫히고는 ".... 하면 열어, 지금 열지 말고"라는 반말이 에어 팟을 뚫고 귀에 들어왔다. 내가 못 들은 말은 과연 무슨 말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내 스쳐가고, 그래, 열이 받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 또한 약간의 짜증과 함께 이내 다시 창문을 열었고, 다시 한번 창문은 닫혔다. 그리고는, "본인만 생각해?"라는 역겨운 말이 귀로 들려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뒤를 돌려 얼굴을 보니, 중년의 아저씨,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저씨가 나를 평가하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이기적인 새끼". 대학원 기간 동안 그가 지도 교수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는 혼자 제안서를 써서, 연구실에 연간 1억씩 3년의 과제를 안겨 줬다. 저년차들은 무능했고 고년차들은 무책임하여 과제의 3년 기간 동안 대부분의 연구를 그 혼자서 다 진행했어야 했다. 심지어 첫 1년을 혼자서 진행하던 끝에, 지쳐서 자퇴를 고민하며 1학기 동안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는 휴학을 하기 전에도, 이후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매우 충실하게 설명해주고 떠났었다. "1년 차의 연구는 종료된 것이고, 2, 3년 차는 별개의 연구니까 너희들이 진행하면 된다. 나도 만약 돌아오게 된다면 졸업에만 집중해야 하니까"라고, 하지만 그가 자퇴를 하지 않기로 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지난 기간 동안 연구실의 아무도 과제를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연구실 학생들이 과제에서 인건비는 꼬박꼬박 충실하게 받고 있었고. 또 다른 학생은 과제는 나 몰라라 하고, 본인의 졸업만을 참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 그에게 교수는 "돌아왔으니, 이 과제를 진행해라"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고로, 그는 그가 혼자 하면서 지쳐서 그만두려 했던 과제를 다시 혼자 진행했어야 했고, 그의 동기는 과제는 거의 하지 않고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차이는 그저 교수가 생각하기에 "그는 교수 말을 듣지 않으니, 이기적이고, 그의 동기는 교수 말을 잘 들으니까, 이타적이다"정도에서 기인한다. 그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의 졸업보다 과제를 우선시했어야만 했다. 졸업은 그만의 것이었지만 과제는 모두의 것, 특히 교수의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과제를 하는 것이, 이타적인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그에게 지도 교수는 본인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며, 툭하면 "이기적인 새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가 매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지도교수가 하는 말들이 모두 틀렸기 때문이었다. 지도 교수는 연구에 손을 놓은 지 정말 오래되었고,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틀렸다. 가령, 설문조사 sample의 수가 100개 밖에 안된다라고 하는 말에 "원래 sample 수는 20개만 넘으면 돼"라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를, 답이 없는 조언들을 해주었다. 틀린 조언들을 들으며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나의 지도교수구나'라는 생각에 슬퍼지고, 또 본인의 정년 이후를 생각하여 연구가 아닌 사업 아이템으로 자꾸만 이 연구를 물들이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마저도 "그의 연구를 잘못 이해한 상태"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안 된다"라고 하면 교수는 늘 "네가 하기 싫은 것이겠지. 이기적인 새끼"의 태도로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졸업할 즈음이 되어서야 교수도 뒤늦게 깨달았다. 연구실에 남아 있는 다른 학생들의 실력이 그에 비하면 부족하고 또 무책임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터지는 문제들을 다 막으면서 가장 이타적으로 행동한 것이 그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그동안 네가 고생 많이 했다"라는 말로 교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표했지만, 사실 다 무슨 소용인가. 그는 종종 그 폭언의 시간들로 쉽게 되돌아 간다. 그리고 오늘 또한 그러한 날이었다. 


버스에서, 단지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연 그에게 "본인만 생각해?"라고 내뱉는 그 처음 보는 아저씨 앞에서, 그는 그에게 "이기적인 새끼"라고 내뱉던 지도 교수의 얼굴과 기억이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유효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던 그 기억들로 잠시 돌아가 멈추었다. 어쩌면, 아직은 나에게 유효한 것만 같다.


오늘의 그는, 그 이후 화가 나서 한참 아저씨를 쏘아보다가, 어차피 끝내지 못할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그저 창문을 닫은 채 돌아왔다. 솔직히 나가서 싸울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창문을 닫나 보려고 내가 계속 창문을 열어 댈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쪽팔릴 뿐 그게 다니까. 그리고 어쩌면 진짜 그가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니까.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이라면, "얼굴에 바람이 들어오는데 창문 좀 닫아주시겠어요?"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정도.

작가의 이전글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0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