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A의 이야기.
지난 주말, 그는 동아리 후배가 결혼한다고 하여 오랜만에 학교 근처에서 동아리 후배들을 만났다. 학부 시절에는 친구들과 무척 자유롭게 쏘다니던(정확히는 꽤 자주 취해서 흥청망청하며 다니던) 학교 근처의 그 거리들은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지긋지긋하고 외롭고, 그를 원망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거리에도 기억은 스며들기에 짧게 머물다 간 어떤 이에게는 이 거리에 그리움과 아쉬움의 감정이 깃들고, 그의 경우처럼 수년간 지독하게 머문 사람들에게는 독소가 거리에 스며든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그는 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꽤 오랫동안 그 거리를 피해 다녔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와서 본 과거의 그 길들은 다행히도 이제 그에게는 어느 정도 단지 '과거'로 남아 있게 된 것 같았다. 그 길에 어찌 나쁜 기억들만 남아있겠는가. 잊혔던 좋은 기억들도 다행히 그 길을 걸으며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 그가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교 입학도, 대학교 졸업도 대학원 졸업도 늦었기에 지금의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물론 몇몇 나보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한 자릿수의 대학원생들이 아직은 존재하지만. 학교에는 이제 박사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후배들만이 남아 있다. 오늘은 그중 한 명인, 후배 A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후배 A의 이야기
후배 A는 한 달 뒤면 결혼을 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 아이의 긴 연애의 대장정이 매우 흥미롭지만 여기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므로 생략. 후배 A는 결혼 후 약 1년간의 신혼생활을 보내고, 이후 외국으로 Post-Doc(포닥, 박사 후 연구원)을 갈 계획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요즘 외국 나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져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계획은 그렇다고.
원래는 취업을 한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포닥을 나간다기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는 물음에,
후배 A는 "교수님의 의견을 꺾기가 어렵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내, "그냥, 네가 포닥과 교수 자리에 아쉬움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교수님 핑계를 대고 '나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네 입장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대기 편하니까"라고, 또 바른 소리를 툭 내뱉었고, 후배 A는 멋쩍게 웃으며, "사실 그렇죠 뭐"라고 웃었다.
그는 늘 툭 그런 이야기들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그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사실 모두 그를 위해서 이기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걸 알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원망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결국 그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숨을 수 있는 거짓말의 언덕도 필요한 것이 삶이지만. 그는 늘 모든 사람들의 본인의 욕망에 솔직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후배 A에게 툭 던진 것이겠지만, 말을 뱉고 나서 술자리에서 조용히 생각을 해보니,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그는 늘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고,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다. 연구실 내내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못했던 그가 어쩌면 교수에게 미움을 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틀리고 잘못된 것을 어떻게 옳고 괜찮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마저도 그의 선택이다. 이제는 겸허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후배 A는 뭐랄까, 늘 현재의 시간에서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고 동시에 그로 인해 현재의 자신을 비하하는 일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속 편하게 산다"와 "생각 없이 산다"의 그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꽤 오랜 기간 보아왔고 딱히 "와 얘 진짜 똑똑하네"를 느낀 순간이 거의 없었지만, 주어진 일은 늘 일정 이상의 퀄리티로 마무리했다.
좋은 실행력. 그가 가진 뛰어난 성질의 것은 바로 좋은 실행력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학한 연구실은 흔히 말하는 "실험" 연구실이었고, 그의 실행력과 적성이 맞아떨어져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 한다. 사실, 나랑은 분야가 전혀 달라서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후배 A가 연구를 잘한다는 생각이, 그로서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러한 성격, "지치지 않고, 실행력이 뒷받침되고,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사람"이 연구자라는 직업에 꽤 적합하다. 특히, 이 경쟁력이 심한 공간에서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일은 특히나, 매우 중요하고.
돌이켜보면 그는 늘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했고, 지쳐서 실행력이 떨어졌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시간 덕분에 그가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모두에게는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이 다른 법이니까. 그저, 그가 보낸 시간 또한 그에게 의미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려 하는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편이 되어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