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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an 12. 2024

어른의 사춘기

우리 그때는 정말 멋졌는데...

설거지를 하던 중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내 모습에 놀란 남편이 왜 우냐고 물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좋아하는 게 없다고 울 나이는 아닌데...,”

내 대답에 남편은 당황해했다. 

나는 ‘그래 이런 일에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어른의 사춘기가 시작되나 봐’라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쯤 지금까지 해왔던 디자인일 대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해 보자고 생각했었다. MKYU김미경 대학에 들어가 미래의 변화를 배우는 수업을 듣고, 여러 친구들과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모임도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모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뚜렷해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다는 게 힘들었다.



오랜만에 20년 지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매일 애들 챙기느라 여유가 없는 친구인데 오래간만에 시간이 났다고 했다. 이런저런 안부 끝에, 친구는 애들이 조금 더 크면 앞으로 뭐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나는 

“넌 뭘 좋아해?” 

"뭐 하고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음..." 

친구는 대답을 생각하다 말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기한테 뭘 좋아하냐고 물어봐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아내로 엄마로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그 느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주관도 뚜렷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당차게 도전하던 친구였는데…’. 친구도 울고 나도 울었다.



지금까지 나로 잘 살아왔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은 꽤나 무섭고 두렵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졸업한 후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는 이런 수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는 돈을 벌어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야 했기에, 돈을 버는 일 외에 다른 곳을 곁눈질할 겨를이 없었다. 외동의 무게와 의무감에 늘 앞만 보며 달렸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보다 주위의 시선을 맞추며 살아왔다. 그러는 사이 내 모습은 색이 다 빠진 무채색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어른의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어제는 우울하고 화가 났다가, 오늘은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불쌍해했다. 살아온 시간들이 안타까웠고, 앞으로의 날들이 두려웠다. 지나온 날과 앞으로 나아갈 날들 사이에서 마음의 조율이 필요했다. 틈나는 대로 내 안을 들여다봤다. 나는 언제 행복했고, 어떤 것에 설렜고 푹 빠졌었는지. 그런 사춘기를 겪고 나서야 미래를 조금씩 색칠해 나갈 수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미술심리 공부를 하고, 컬러로 마음 다스리기도 하고, 브랜딩 공부도 하고, 온라인마케팅 공부와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브랜드도 만들었다. 




어른도 사춘기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마음이 힘든 구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단단한 경험이 있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은 꿈이 있으니 답을 찾을 것이다. 사춘기 시기가 지나가면 성장하듯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한 뼘 더 깊어질 거라 믿는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거 생각나? 너 회사 때려치우고 한 달간 유럽여행 갔던 거? 너 그때 엄청 멋졌어. 우리 다시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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